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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21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 그 헌터의 임대 아파트(1)

스 포 일 러 주 의 !

 

※  본 팬픽은 진보람 님의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를 바탕으로 한 팬픽입니다.

 

해당 소설의 결말, 또는 전개에 대한 내용이 있으므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의 결말을 읽지 않았거나, 해당 소설을 읽으실 예정이라면 본 팬픽을 읽는 것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 *

"아저씨, 다친 곳은 없어요?"
"전 괜찮아요. 지호 씨야말로 많이 다쳤잖아요. 괜히 저 지켜주려다가."

괴물들이 즐비한 균열 안에는 도시가 있다. 괴물이 됐을 지언정 마음까지는 괴물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을 차마 버리지 못해 함께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곳. 누군가는 사회의 쓰레기 매립지라 부르지만, 공식적으로 그곳은 균열도시라 이름 붙여진 곳. 그리고 거기서도 다소 외각지역에는 20층짜리 아파트가 지어져 있다.
속칭 헌터 임대 아파트, 그리고 그곳에서도 창문이 늘 열려져 있는 11층에는 한때 영웅이라고 불렸던 스물여섯살 난 지호가 살고 있다.

"아저씨 약하잖아요. 이제 아저씨 넘어지면 뼈 부러져요."

그리고 그 지호는 지금 보라색 빛이 만연한 치료기 안에 들어가 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지만 그 안에 보이는 것은 사람의 피부가 아닌, 짙푸른 파충류의 비늘이다. 오래전 변해버린 몸은 오랜 과학기술로도 되돌릴 수 없었으니까.
치료기 옆에는 안타까워하며 지호를 보고 있는 승찬이 쪼그려 앉아있다. 최근 들어 점점 더 주름이 깊어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움이 가득할 따름이다. 지호의 말이 신경쓰였는 지 미간을 찡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나이가 들어보인다.

"지호 씨야말로 조심 좀 해요. 지호 씨는 나이 안먹을 것 같죠?"
"각성자는 나이 늦게 먹거든요? 아직 팔팔해요."

그렇게 말하며 상처투성이인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푸른 비늘로 덮인 오른손 끝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달려있다. 꽈악 주먹을 쥐니 비늘 위로도 도드라진 근육은 믿음직스럽기만 했다.

"알았으니까 쉬기나 해요. 내일 생일이잖아요." 
"아, 그랬지. 음식 준비해야되는데."
"제가 할테니까 집주인은 쉬기나 해요."
"그런다고 집세 내려드리진 않을거거든요."

승찬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치료기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호가 치료기에 들어가 있으면 항상 옆에 앉아서 심심하지 않게 떠들어주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지호는 늘 신경쓰지 말고 푹 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 그를 어쩌면 좋을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나 좋아해요?"

불현듯 그렇게 물으니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지호를 바라봤다. 승찬은 한참이나 그러고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아프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기 시작했다. 그런 승찬을 보다가 지호는 히죽히죽 웃으며 몸을 승찬 쪽으로 돌렸다.

"아 왜요~이렇게 오래 봤는데? 나 좋아하죠?"
"나이 차이가 몇인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잖아요? 어때요? 네?"
"쉬기나 해요, 내일 또 바빠질텐데."

승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버렸다. 그가 떠난 자리를 한참이나 보던 지호는 몸을 바르게 하고 눈을 감았다. 몸 안에 흐르는 이형에너지를 다친 부위로 흘려보내고 있자니 어쩐지 간지러워져 긁적거리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손톱이지만 지호의 딱딱해진 피부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리듬있게 들려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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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던가, 대원은."
"늘 같죠. 바깥은 어떻던가요?"
"전에 얘기한 방향으로 정해진 모양이다."
"얼마나 남았죠?"
"확실한 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지."
"그걸로 만족하실 겁니까?"
"만족하지 않으면, 방법이 있나?"
"……없습니다."
"그럼,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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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호의 생일날 아침. 지호와 승찬은 날아다닐 듯이 부엌과 거실을 오갔습니다. 수없이 많은 접시들과 그릇들이 둘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지만, 요령있게 피하며 음식들을 날랐습니다.

"아저씨, 이거 갈비찜! 끓어요!"
"불 좀 줄여주실래요! 그, 이거, 이거!"

허겁지겁 당근, 양배추 같은 채소들을 냉장고에서 꺼내 마구잡이로 던져댔지만 땅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지호의 염동력이 그것들을 잡아냈습니다. 

"아, 던지지 좀 말아요! 이거 뭔데요?!"
"샐러드!"

승찬이 짧게 대답하고는 드레싱 튜브를 냅다 던졌습니다. 그것까지 잡은 지호는 잠시 그를 노려봤지만, 그럴 틈 조차 없었습니다. 어쨌든 손님들은 들이닥칠 거고, 요리는 이제 막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아, 진짜! 어제 준비한다면서요!"
"준비는 했잖아요! 썰고, 섞고, 내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 썰고, 섞고는 좀 해두지!"
"어제 하루종일 자고 있었으면서!"

서로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손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하루이틀 해본 일이 아닌 듯이 보였습니다. 지호는 염동력까지 동원해가며 식칼 여러개로 채소들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아, 맨날 이게 뭐야 진짜! 세입자 씨, 이러기에요?"
"뭘 이러기에요! 맨날 다쳐서 잠만 자는 집주인이!"

바빠보이는 모습이지만, 어쩐지 우스운 상황에 지호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승찬은 그를 보다가 결국 자신도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아, 그러고보니까 언니 돌아오고 나서는 처음이네요."

문득 몇 달 전에 돌아온 보현과 준우를 떠올린 지호의 손이 멈췄습니다. 승찬은 웃음기 가득한 모습으로 갈비찜을 그릇으로 옮겼습니다. 고소하면서도 기름진 냄새가 부엌을 가득 매웠습니다.

"오래 기다렸죠. 매일같이 나가서는."
"매일같이는 아니거든요……."
"그렇죠. 매일이었죠."

승찬은 예전을 떠올리는 듯이 고개를 들고는 감상에 빠졌습니다. 보현과 준우가 균열에서 돌아온 그날 밤, 지호는 보현을 안고는 엉엉 울면서 돌아왔습니다. 보현 역시 울음을 참지 못한 채였죠. 그 광경을 수많은 사람들이 봤지만, 누구 하나 웃을 수는 없었습니다. 오직 준우만이 껄껄거리며 웃고 있을 뿐이었죠.

"그 때 지호 씨 표정이 진짜……. 무슨 군대 간 애인 보는 줄 알았어요."
"아, 진짜아! 빨리 이거나 해요!"

지호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발을 쾅쾅 굴렀습니다. 울림이 건물 전체에 퍼지는 살벌한 풍경이었건만 그 모습을 보면서도 승찬은 놀리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영웅을 놀릴 수 있는 기회란 흔치 않거든요.

"그 때 다들 그걸 봤어야 했는데. 눈물에 콧물에 침까지 범벅되서는……."
"진짜 오늘 말하기만 해봐요!"
"저는 유리창 깨면서 날아오길래 또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았단 말이죠. 자다가 놀래가지고."
"아아아! 월세 올릴거야!"

비명섞인 협박이었건만 승찬의 입가에선 웃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Posted by B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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