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포 일 러 주 의 !

※ 본 팬픽은 네이버 시리즈에서 활동하시는 월하야담 님의 '귀령'을 바탕으로 한 팬픽입니다.

해당 소설의 결말, 또는 전개에 대한 내용이 있으므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귀령' 2부의 결말을 읽지 않았거나, 해당 소설을 읽으실 예정이라면 본 팬픽을 읽는 것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 *

납골당에서 나온 건우는 흡연실을 찾아 들어갔다. 흡연실 안에는 환풍기가 작동하지 않는지 매캐한 담배연기들이 자욱하게 쌓여있었다. 빈속에 숨을 쉴 때 마다 담배연기가 쌓이니 또다시 구역질이 치솟았다.

"큭……!"

쓰라린 위액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불쾌했다. 간신히 참아낸 건우는 가래와 함께 쓴물을 뱉어냈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옆에서 불쑥, 하고 무언가가 내밀어졌다. 옆을 보니 중년의 여성이 건우를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물병 하나가 손에 들려져 있었다.

"아, 아뇨……그……."
"괜찮으니까 드세요. 많이 힘드시죠?"

어서 받으라는 듯이 페트병을 흔드는 여성에게서 물병을 받았다. 방금 막 구매했는지 차가운 감각이 손바닥 위에 시리도록 느껴졌다. 잠시 물병을 바라보던 건우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 어머님도……."
"저는 저희 어머니 49재셔서요."
"아, 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건우에게 손을 내저으며 여성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그것에 화답하듯 건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감사합니다."

건우는 페트병의 뚜껑을 열어 차가운 물을 마셨다. 빈 속이 찬물로 채워지는 감각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여성은 페트병을 비워가는 건우를 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ㅡ치익, 치익. 스읍, 후.

짙은 담배연기 한줄기가 흡연실을 메웠다. 건우 역시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뒤적거렸다.

"……잃으신 지 얼마 안됐나봐요."

담배를 찾던 건우는 멈추고 여성을 쳐다봤다. 여성은 안쓰러운 눈으로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잡았던 담배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부모님을 뵈러 왔습니다. 그리고……."

건우는 처연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


흡연실 옆의 공원 벤치. 둘은 통성명을 했다.

여성의 이름은 이주연. 고등학생 아들을 둔 그녀는 혼자 어머니의 49재를 위해 찾아왔다가 너무 괴로워하고 있어 보이는 건우를 보고는 아들 생각이 나 그를 도와주러 온 것이다.

"그런데 남편분이나 자녀분들은……."
"저 혼자 왔어요. 애가 수능이 코앞이라서."

아직 4월이건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주연의 말에 건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중요할 시기니까요. 일분일초도 맘대로 쓸 수 없죠."
"……네."
"그럼 건우 씨는……."

조심스럽지만 그의 사연이 궁금하다는 시선. 남들이 보기에는 실례가 아닐까 하지만 어째선지 건우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털어놓고 싶을 정도였다. 그것으로 자신의 마음이 가벼워진다면야.

"……그, 결혼……하려고 했었던 사람입니다……."
"아……."

첫마디를 떼는 것이 어려웠을까.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점점 더 말이 많아지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신에 대한 건 말하지 못하다보니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주연은 별로 개의치 않다는 듯이 따로 물어보는 낌새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부분은 본인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머나'라던가, '세상에'라던가, '어쩜 어쩜'이라던가. 수많은 추임새를 넣어가며 이야기를 듣던 주연은 손수건을 꺼내 눈시울을 닦았다. 어느새 축축해진 손수건을 곱게 접어 핸드백에 넣은 주연은 건우의 두 손을 꽈악 잡았다.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밥도 안드신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입맛도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여기 앞에 가서 국밥이라도 꼭 드셔야돼요."
"……예.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걱정스럽다는 듯이 건우를 보던 주연은 시계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요, 내가 밥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애들 점심시간이라."
"아닙니다. 마음만으로도 제가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꼭 드셔야돼요!"

그렇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한 주연은 공원길을 걸어나갔다. 건우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흡연실로 다시 들어왔다.

주머니에 구겨져있던 담배를 꺼내 물고는 라이터를 찾았다.

"남편 분 하시는 사업 잘 되시고……. 아드님도 좋은 대학 가시고……. 손녀는 이른 시기에 보니까 너무 아드님한테 화내지는 마시고……."

오랜만에 대화를 해본 탓인지 조금 흥분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장님네 부부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사람과 대화를 한 것 만으로도 어쩐지 조금은 기운이 났다.

저 멀리엔 여전히 주연이 오솔길을 걸어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웃음이 흘러나왔다.

라이터를 찾은 건우는 담배에 불을ㅡ.

"……어?"

ㅡ붙일 수 없었다.

방금 뭐였지? 건우는 담배를 떨어뜨리고는 입을 가렸다. 그러나 한번 움직인 입술은 멈출 수 없었다. 아니, 그건 자신의 힘으로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틀어막은 손의 틈새 사이로 무언가가ㅡ.

"무, 무, 무병장수 하니 조상님 덕이요……만사가 형통하니 쌓아온 덕이요……지금처럼만 지내면……대대손손……!"

그는 흡연실을 뛰쳐나와 공원의 오솔길을 따라 뛰어갔다. 저 멀리엔 여전히 주연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수다를 떠는 주연의 몸이 뒤로 돌며 건우를 쳐다봤다. 놀란 듯 커다래진 눈동자가 건우의 눈에 들어왔다.

"거, 건우 씨?!"
"으아아아아악?!"

그러나 소리를 지르며 놀란 것은 오히려 도건우였다. 꼴사납게 주연의 앞에 넘어진 건우는 덜덜 떨면서 주연을 바라봤다.

아니, 주연이 아니다.

"아, 아, 아……!"

놀란 채 굳어버린 주연의 바로 뒤에, 두 노인이 손을 맞잡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어쩐지 주연과 닮았다.

아니, 주연이 저 둘을 닮은 것이다.

"저, 저기……괜찮아요?"

손을 내밀며 다가오는 주연. 그리고 그에 맞춰 한 걸음씩 다가오는 두 노부부.

인자해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 인자함은 공포로 다가올 뿐이었다.

"오, 오지마!"

건우는 주연을 지나쳐 도망치듯이 납골당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눈에 띄는 하얀 트럭에 올라타고는 시동을 걸었다. 끼기긱 하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리고 그는 납골당을 빠져나왔다.

Posted by Bule
,

스 포 일 러 주 의 !

 

※ 본 팬픽은 네이버 시리즈에서 활동하시는 월하야담 님의 '귀령'을 바탕으로 한 팬픽입니다.

 

해당 소설의 결말, 또는 전개에 대한 내용이 있으므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귀령' 2부의 결말을 읽지 않았거나, 해당 소설을 읽으실 예정이라면 본 팬픽을 읽는 것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 *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한 납골당.


자욱한 향과 기도하는 소리가 그 안을 가득 메운 곳에서 한 청년이 유골함 앞에 엎드려 있었다.
한참이나 절을 한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고개를 푹 숙이고는 그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 어머니. 저 건우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왔습니다."


무뚝뚝함이 묻어나오는 말투로 건우는 안부인사를 올렸다.


이윽고 메고있던 배낭에서 북어포, 사과, 배, 청주 한 병을 꺼내 유골함 앞에 있는 작은 상 위에 차렸다.


조촐한 차례상이었지만 상이 작아서 그런지 한가득 차 보였다.


향을 꽂아 넣은 후,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타닥, 하는 소리와 함께 향불이 피어올랐다. 아찔한 향내가 건우의 코를 찔러왔다.



"준비한 게 이것 뿐이라 죄송합니다. 다른 건……준비할 수가 없더라구요."


건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턱을 쓰다듬었다. 자른 지 얼마나 됐는지, 거칠거칠한 감각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원래라면……."


입술을 잘근 씹었다. 울컥하는 마음이 한 순간 피어올랐다가, 그것을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깊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나니 허전한 마음만 가득해졌다.


"원래라면……신부감도 데려왔을겁니다."


그 순간, 치밀어 올라오는 구역질에 건우는 화장실로 뛰쳐들어갔다. 변기통에 주저앉아 안에 든 것을 쏟아내려 했지만, 나오는 것은 허여멀건한 위액 뿐이었다. 최근 며칠동안이나 먹은 것이라곤 물밖에 없었으니까.


얼마나 토악질을 해댔는지, 쓰라린 속을 감싸며 건우는 변기 앞에 주저앉았다. 더러운 화장실 바닥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의 인생은 밑바닥까지 떨어지고야 말았으니까.


------------------------------------------------------------


지키겠다고 그렇게나 다짐했다.


언제나 옆에 있는 범으로서 살겠다고 그렇게나 다짐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스러져 간 해원보살님 앞에서, 자신을 아들처럼 아껴주던 이장님 앞에서,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금화보살님 앞에서 그렇게나 다짐했다.



그랬는데.



결국 건우는 거대한 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범은 무슨, 영지의 놀림대로 그는 기껏해야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태상장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결국 하연은 건우에게 산군의 기운을 씌우고, 그는 온 몸에 쏟아지는 기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이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눈을 허옇게 뒤집어 깐 만덕이 기절해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온 몸의 근육이 모조리 끊어진 듯한 고통이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그는 차디찬 흙바닥에서 피거품을 내뿜으며 꿈틀거릴 뿐이었다.


'선녀님.'


그 격통 속에서 든 생각에 건우는 어기적 어기적 기어서 몸을 돌렸다. 자갈들이 상처를 긁을 때 마다 비명을 내지르며 그는 세암당을 바라봤다.


그리고 배를 끌어안은 채 쓰러져있는 하연을 봤을 때.


"아……아아……!"



신경을 찢는듯한 고통 속에서 그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연을 향해 기어갔다. 손톱이 뜯겨나가고, 뺨이 갈려나갔다.
그렇게 간신히 세암당의 툇마루에 올라왔을 때.


"안돼……안돼, 안돼, 안돼, 안돼……!"


그는 하연을 천천히 끌어안았다. 힘이 모조리 빠져버린 사람 특유의 무게가 그를 짓눌렀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가볍던 하연의 몸이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선녀님……선녀님, 눈 좀 떠보십시오……선녀님……!"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마치 길디 긴 잠을 자듯이, 하연이 추욱 늘어졌다. 건우는 먹물과 핏물이 뒤섞인 하연의 손을 기도하듯이 꽈악 붙잡았다. 그러나 따스했던 그 손은 마치 흙바닥처럼 거칠고, 차가웠다.



"선녀님……다 끝났습니다……다 끝났다구요……이제 일어나셔야죠……."


언제나 빨갛던 볼은 핏기가 빠져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그는 하연의 가슴에 귀를 댔다. 또, 볼록하게 올라오기 시작한 그녀의 배에 귀를 댔다.
들려오는 것은 고요뿐이었다.


"선녀님……! 이화선녀님!"


그는 마구잡이로 하연의 몸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 감긴 눈은, 떠질 줄 몰랐다.


"하연아아아아아!!!!!!!!!"


그렇게, 이제서야 피어나기 시작한 꽃은.
그렇게, 져버리고야 말았다.


------------------------------------------------------------


"이제……뭘 해야 할까요……?"


간신히 구역질이 멈춘 건우는 다시금 부모님의 앞에 섰다. 미친 듯이 찾아간 금화당의 전안에서, 신장칼을 움켜쥔 채 목을 매단 만덕의 시신을 본 그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세암당으로 갈 수도 없었다. 서울에 있던 그의 집은 팔아넘긴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며 편히 쉬지도 못한 채 그는 그저 숨만 붙어 살아있었다.


그래, 살아있었다.


오직 그만이 살아있었다.


가족도, 연인도, 아이도, 복수할 대상마저 잃어버린 채, 그는 살아있었다.


"왜 제가 살아있는건가요……?"


대답없는 물음에, 그저 향불만이 타오를 뿐이었다.

Posted by Bu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