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포 일 러 주 의 !

 

※  본 팬픽은 진보람 님의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를 바탕으로 한 팬픽입니다.

 

해당 소설의 결말, 또는 전개에 대한 내용이 있으므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의 결말을 읽지 않았거나, 해당 소설을 읽으실 예정이라면 본 팬픽을 읽는 것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 *

승찬이 뒤를 돌아본 곳에는 김동주가 소파에 삐딱하게 앉아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감시하는 듯한 모습의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오늘은 조금 어떻던가."
"평소랑 같았죠.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동주는 두 눈을 손가락으로 몇 차례 누르고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 표정에는 진심으로 피곤함이 가득해 보였다. 승찬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다시 돌려 치료기를 바라봤다. 치료기 안에는 식물의 뿌리같은 것들이 수없이 얽혀서 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승찬은 알고 있다. 이 안에는 세상을 구한 영웅이 잠들어 있음을.

지호가 여왕을 물리치고 난 뒤, 세상은 너무나도 변했다. 균열의 위협이 사라지고 나자 시민들의 두려움은 얼마동안 사라진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윽고 사람들에게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팔에 비늘이 생기고, 얼굴이 흉측하게 변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윽고 사회에서 도태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차별받고,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퇴출됐다. 종교단체에서는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지만 실상은 그들을 악으로 규정짓는 행위였다.
정치권에서는 그들을 위한 정책들을 발표했지만, 그런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았다. 연예인들이 TV에서 감정에 호소했지만 그들의 이중성이 밝혀질 때마다 더욱 소외받는 것은 변하기 시작한 사람들, 변화자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민들이 움직였다. 

가장 먼저 균열에서 넘어왔던 사람들에게 화살이 돌려졌다. 어느날 의문의 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그 범인으로 균열 생존자가 지목됐다. 법정에서는 정당방위였음을 수차례 변호했지만, 법은 기울대로 기운 민심의 손을 들어줬다.
이윽고 이 사건은 방아쇠가 되어 그들 모두를 내쫓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뉴스와 신문은 연일 비난의 목소리를 냈고, 시위대가 피켓을 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균열 생존자와 변화자들은 조금씩 뭉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였고, 적은 세계 그 자체였다. 그들의 목소리는 수면 위로 올라올 틈도 없이 가라앉을 뿐이었다. 당장의 안전조차 보장할 수 없게 되자 앞뒤 가릴 수가 없어 화살을 돌릴 곳을 찾던 그들은 마침내 훌륭한 방패를 얻었다.

그것이 이지호 헌터였다.

그들은 주장했다. 만일 이지호 헌터가 균열 생존자들과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주장했다. 만일 이지호 헌터가 여왕을 물리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주장했다. 만일 이지호 헌터가 여왕의 힘을 모두 흡수했더라면.
그들은 주장했다. 밑도 끝도 없이 주장했다. 누가 들어도 터무니없는 헛소리였지만, 이미 당겨진 도화선을 끌 수는 없었다.

그렇게 지호는, 세상에게 버려졌다.

균열의 외딴 곳에 지어진 자그마한 아파트에 거처가 정해진 지호는 순순히 말에 따랐다. 그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는 너무 강했으니까.
한동안 잠잠해진 여론과 반대로, 이번엔 지호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식물의 뿌리같은 것이 날개처럼 등에서 자라기 시작하고, 비늘이 온 몸을 뒤덮었다. 눈동자가 붉게 변할 때 쯤, 그의 모습은 이전의 여왕과도 닮아있었다.
그를 가끔 보러오던 친구들조차 발길을 끊기고 몇 달이나 지났을까. 선글라스를 낀 동주가 찾아왔다.

"몸은 좀 어떤가."
"크르아아각."
"……성대도 변화가 일어났나 보군. 머릿속으로 말해보게. 할 수 있겠지."

지호였던 것의 고개가 돌아가고, 눈이 새빨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오지 마요.'
"그럴 수는 없지. 앞으로도 말이야."
'오지 마요.'
"자네는 이제 위험인물이 됐어. 누군가는 감시를 해야하지. 그리고 그게 하필이면 전 소장이었던 내가 됐고."
"그르아아가아!!"

그것이 괴성을 지르며 팔을 휘젓자 집안의 물건들이 한순간 공중에 들어올려졌다가 산산조각나며 떨어졌다. 이형 에너지가 온 방을 휩쓸기 시작하며 태풍을 일으켰다. 이형 에너지의 바람이 동주의 몸을 거세게 휘몰아 쳤고, 그 때문에 그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가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선글라스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구겨지고 나자 그 너머에서 새하얗게 변한 눈동자가 보였다.

"그륵……카륵……!"
"그래, 변화자. 정신계 각성자들은 눈동자가 변하더군."

그의 모습을 본 괴물은 이형 에너지를 멈추었다. 방을 몰아치던 잡동사니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미안해요.'
"아니, 우리의 잘못이다."
'미안해요.'
"대원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어. 우리의 이기심때문이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사과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어. 그것이 대원이라면 더더욱."

괴물은 끄륵 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렸다. 그것은 어찌보면 울고있는 것 처럼 보였다. 동주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 옆에 앉았다. 덩치가 큰 그였건만 괴물의 옆에 앉으니 어린아이처럼 작아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팔을 뻗어 괴물의 등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전 괴물이 됐어요.'
"대원은 영웅이야. 누구도 대원에게 책임을 말할 수는 없어."
'전 아무도 구하지 못했어요.'
"나를 구했어. 우리를 구했고."

괴물은 천천히 손을 펴보였다. 나뭇가지와도 같은 얇은 마디들에 푸른 비늘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바스락, 하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마디들이  구부러졌다, 펴졌다.

'이거 봐요. 이제 예전의 이지호는 더이상 없어요.'

버적, 버적 하는 나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얼굴이 동주를 향했다.

'날 봐요. 뭐가 떠올라요?'
"여왕."
'네. 여왕. 제가 삼킨 여왕의 이형 에너지들이 제 몸에 흐르는 게 느껴져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여왕의 의식이 떠올라요. 저는……저는 이제 제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대원은 대원이야. 세상을 구했던 이지호 헌터. 그게 자네야."

빠그작, 하며 괴물의 입가가 부스러져 찌그러졌다. 그것이 지호가 지을 수 있는 비웃음이었다.

'여기에 어째서 왔는지 알고 있어요.'
"……."
'괜찮아요. 저도 이제……쉬고 싶어요. 더 이상 뭔가를 부수고 싶지 않아요.'
"……미안하다."
'괜찮아요. 소장님 덕분에 결심이 섰어요. 승찬 아저씨도 들어오라고 해요.'

그 말과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잠시 후, 승찬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혐오스러워 하는 표정이 순간 지나쳤지만, 이내 그는 서글프게 웃으며 괴물의 앞에 앉았다.

'오랜만이에요, 아저씨.'
"지호 씨, 난……."
'괜찮아요. 원망하지 않아요. 솔직히, 내가 봐도……그렇잖아요?'
"……미안해요."
'정말 괜찮아요. 진짜에요. 나한테 미안해 하지 마요.'

삐그덕 하는 소리가 들리고, 비늘이 덮인 나뭇가지들이 승찬에게 다가왔다. 흠칫 하며 승찬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내 나뭇가지들에 뺨을 비볐다. 바스슥, 하며 나뭇가지 비벼지는 소리가 울렸다.

"정말……미안해요. 지호 씨. 이것 밖에 해주지 못해서……."
'괜찮다니까요? 너무 미안해 하지마요.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이래서……제가 너무 부끄럽네요.'
"자랑스러워요. 난, 난 지호씨가……너무 자랑스러워요……. 고마워요……."

이내 나뭇가지들을 부여잡고 승찬이 서럽게 울었다.

치료기에 몸을 뉘인 괴물 위로 보라색의 파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과 동시에 마치 햇볕을 쬔 나무들이 자라듯이 치료기 안을 뒤덮었다. 승찬이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편안한 웃음을 짓듯이 입가를 찌그러뜨리고 있는 괴물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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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팬픽은 진보람 님의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를 바탕으로 한 팬픽입니다.

 

해당 소설의 결말, 또는 전개에 대한 내용이 있으므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의 결말을 읽지 않았거나, 해당 소설을 읽으실 예정이라면 본 팬픽을 읽는 것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 *

 

'"지호 씨, 우리 왔어요!"

초인종 너머로 우렁찬 보현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지호가 현관문을 열자 그곳에는 비닐봉투를 들고 있는 보현과 소주 한 박스와 커다란 봉투를 위태롭게 들고 있는 준우가 있었습니다.

"언니! 뭘 이렇게 사왔어요! 안사와도 된다니까?"
"에이, 난 처음 하는 생일파티잖아요. 이 정도는 받아둬요."
"무거우니까 빨리 받아라. 이게 다 네거니까. 넌 오늘 죽었어."

박스를 어깨 위로 받치고는 다른 손으로 선글라스를 벗으며 준우가 말했습니다. 그 모습에는 예전과 같은 살벌함 보다는 장난기 가득한 옆집 오빠같은 느낌이 더 강해져 있었습니다.
지호는 박스와 봉투들을 받으며 준우를 노려봤습니다. 혈관이 도드라져 있는 눈이 떼룩, 하고 지호를 흘겨보고는 씨익 웃었습니다.

"뭘 봐."
"도대체 저런 게 어디가 좋다고. 언니, 그러지 말고 나랑 살자니까요?"
"그거 좋다! 미안, 준우야. 우린 여기서 끝인가보다."
"야, 너 찾으러 내가 무슨 고생을……."
"또 또 저 소리. 어휴, 지겨워, 지겨워."

보현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현관문턱에 앉았습니다. 어이구, 어이구, 소리를 내며 앉은 보현의 앞에 준우는 무릎을 꿇고 앉아 신발을 벗겨주었습니다. 온 몸의 근육이 약해져 이젠 허리숙이는 일 조차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죠.
준우의 부축을 받아 집으로 들어온 보현은 한상 가득 차려진 걸 보고 입을 떡 벌렸습니다.

"상다리 부러지겠다!"
"이번엔 힘 좀 써봤어요. 어서오세요."

부엌에서 승찬이 나오며 말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탕수육이 한가득 담긴 접시가 있었습니다. 지호가 그것을 받아주니 그제야 살겠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휴, 몸은 괜찮으세요?"
"저야 늘 괜찮죠. 그나저나, 음식 준비하느라 힘드셨겠어요."
"집주인이 시키니 별 수 있나요. 월세 올린다고 협박해서 죽겠어요."
"아저씨, 언니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지호가 탕수육을 내려놓으며 노려보니 승찬은 이크, 하며 도망치듯이 다시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보현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준우를 보고는 한 소리를 했습니다.

"봤지? 저게 내조야. 너도 나한테 저렇게 좀 하라고."
"하고 있어. 쉬기나 해, 내가 할게."

팔을 걷으려는 보현을 제지하며 그는 승찬을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보현을 소파에 앉히고 그 옆에 앉은 지호는 많이 야위어버린 그의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여기저기 긁히고 굳은살이 박힌 손이었습니다.

"언니, 이렇게 나와도 돼요? 더 쉬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걱정도 팔자야. 의사가 여기서 더 좋아질 수가 없다, 건강한 사람이 왜 비싼 병원비 내면서 놀고 있냐 그랬다구요."
"돌팔이 아니에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각성자 병원 많이 없잖아요."

오랜만에 들으니 더욱 적응이 안되는 그의 농담에 지호는 인상을 찡그렸습니다. 균열을 통과할 때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을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 더욱 마음에 걸려 손을 억세게 잡았습니다.

"저는 지호 씨가 더 걱정이에요. 피부 거친 것 좀 봐."
"……어떻게 안된다고 그러더라구요."

오른손은 물론 몸의 절반을 뒤덮기 시작한 비늘은 날씨가 조금만 추워져도 금새 갈라져 진물이 흐르곤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크림을 발라도 임시방편일 뿐이었으니 말이죠.

"그래도 괜찮아요. 수트에 젤 같은 거 바르면 꽤 오래가요."
"수트 입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일 중독이에요, 그거."
"헌터인걸 어떡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하지 말걸 그랬어요."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툴툴대는 지호를 다정하게 달래며 보현은 갈비찜을 하나 집어먹었습니다.

"준우가 해준 것 보다 괜찮네. 지호 씨가 했어요?"
"거의 아저씨가 했고 전 옆에서 썰기만 했죠."
"그러고보니까 승찬 씨랑 사이 좋네요. 잘 지내요?"
"아저씨야 뭐, 잘 지내죠. 밑에 층에 살아요."

히죽 웃으며 보현은 지호를 바라봤습니다. 이상한 느낌에 슬쩍 멀어지려 하니 그가 손을 꽈악 쥐어 도망치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거 말고. 둘이 잘 지내냐구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에이, 뭘 아니야. 다 큰 남녀 둘이 한 지붕 밑에서 사는데 아무런 일도 없다구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진짜? 승찬 씨한테 문제가 있네, 그러면. 있어봐요. 내가 한 소리 해주고 올게."
"언니, 진짜. 앉아있어요!"

어디서 그런 활기가 남아있는 지 모르겠는 속도로 보현이 부엌으로 뛰어들어가고, 지호가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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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할까요."
"사람들을 조금 부르지. 복잡하긴 하겠지만, 효과적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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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숙취때문에 치료기에 들어간 기분은 어때요."
"죽겠어요."

치료기 안. 보라색 파장을 머리에 쐬며 지호는 끙끙 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승찬이 바닥을 꺼뜨릴 기세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내가 적당히 먹으라고 했죠?"
"분위기에 취해서……."
"분위기 같은 소리 하시네요."
"처음 마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자제할 수 있을 줄 알았죠."

승찬의 얼굴이 한 순간 구겨지더니, 이내 다시 펴졌다.

"자제는 무슨. 까딱하면 또 사고칠 뻔 했어요. 알아요?"
"그때는 진짜 처음 마셨으니까……."
"네, 친구분들이 말리지 않았으면 건물이 날아갔겠죠. 그 이후로 술 안마시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생일날 정도는 봐줘요……. 머리 지끈거리니까 잔소리 하지 좀 마요."

지호가 이마를 짚으며 일어나려 하자 퉁, 하고 승찬이 손바닥으로 치료기를 때렸다.

"누워 있어요. 잠이나 자요."
"그치만, 뒷정리는 해야……."
"제가 할게요. 술취한 사람 데려다가 정리 시키면 잘도 되겠어요."

신음소리를 내며 지호는 다시 치료기에 몸을 뉘였다. 손닿는 곳에 마침 페트병 하나가 있길래 들어보니 물이 담겨 있었다. 한 모금 마시고 난 그는 몸을 옆으로 돌려 승찬을 향했다.

"아저씨. 그래도 생일상 이렇게 받으니까 좋네요."
"지호 씨 덕에 이렇게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다들 지호 씨 한테 고마워 하고 있어요."
"에이, 언제적 얘기를 하고 그래요."
"전 항상 고마워 하고 있어요. 고마워요, 지호 씨."

보라색 빛 속에서도 새빨개진 얼굴을 한 지호는 앓는 소리를 하며 몸을 반대쪽으로 뉘였다. 머리가 울리는 것이 술때문은 아닐 것이다. 
한참을 끙끙거리던 그는 다시 몸을 돌렸다. 거기엔 여전히 인상을 구기고 있는 승찬이 보였다. 여전히 애취급을 하는 모습에 어쩐지 그는 마음 한 켠이 영 갑갑했다.

"잘래요. 이번 달 월세는 특별히 깎아준다."
"주무세요. 뒷정리 해놓고 갈게요."
"네, 고마워요, 아저씨."

지호가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하는 숨소리가 치료기 너머까지 들려오자 승찬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료기의 화면에선 바이탈사인처럼 일정한 주기로 신호가 들쭉날쭉하게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안정적인 파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한 승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한참이나 찡그리고 있다가 눈을 뜬 그는 뒤를 돌아봤다.

"잠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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