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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2.07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 그 헌터의 임대 아파트(2)

스 포 일 러 주 의 !

 

※  본 팬픽은 진보람 님의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를 바탕으로 한 팬픽입니다.

 

해당 소설의 결말, 또는 전개에 대한 내용이 있으므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의 결말을 읽지 않았거나, 해당 소설을 읽으실 예정이라면 본 팬픽을 읽는 것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 *

 

'"지호 씨, 우리 왔어요!"

초인종 너머로 우렁찬 보현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지호가 현관문을 열자 그곳에는 비닐봉투를 들고 있는 보현과 소주 한 박스와 커다란 봉투를 위태롭게 들고 있는 준우가 있었습니다.

"언니! 뭘 이렇게 사왔어요! 안사와도 된다니까?"
"에이, 난 처음 하는 생일파티잖아요. 이 정도는 받아둬요."
"무거우니까 빨리 받아라. 이게 다 네거니까. 넌 오늘 죽었어."

박스를 어깨 위로 받치고는 다른 손으로 선글라스를 벗으며 준우가 말했습니다. 그 모습에는 예전과 같은 살벌함 보다는 장난기 가득한 옆집 오빠같은 느낌이 더 강해져 있었습니다.
지호는 박스와 봉투들을 받으며 준우를 노려봤습니다. 혈관이 도드라져 있는 눈이 떼룩, 하고 지호를 흘겨보고는 씨익 웃었습니다.

"뭘 봐."
"도대체 저런 게 어디가 좋다고. 언니, 그러지 말고 나랑 살자니까요?"
"그거 좋다! 미안, 준우야. 우린 여기서 끝인가보다."
"야, 너 찾으러 내가 무슨 고생을……."
"또 또 저 소리. 어휴, 지겨워, 지겨워."

보현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현관문턱에 앉았습니다. 어이구, 어이구, 소리를 내며 앉은 보현의 앞에 준우는 무릎을 꿇고 앉아 신발을 벗겨주었습니다. 온 몸의 근육이 약해져 이젠 허리숙이는 일 조차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죠.
준우의 부축을 받아 집으로 들어온 보현은 한상 가득 차려진 걸 보고 입을 떡 벌렸습니다.

"상다리 부러지겠다!"
"이번엔 힘 좀 써봤어요. 어서오세요."

부엌에서 승찬이 나오며 말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탕수육이 한가득 담긴 접시가 있었습니다. 지호가 그것을 받아주니 그제야 살겠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휴, 몸은 괜찮으세요?"
"저야 늘 괜찮죠. 그나저나, 음식 준비하느라 힘드셨겠어요."
"집주인이 시키니 별 수 있나요. 월세 올린다고 협박해서 죽겠어요."
"아저씨, 언니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지호가 탕수육을 내려놓으며 노려보니 승찬은 이크, 하며 도망치듯이 다시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보현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준우를 보고는 한 소리를 했습니다.

"봤지? 저게 내조야. 너도 나한테 저렇게 좀 하라고."
"하고 있어. 쉬기나 해, 내가 할게."

팔을 걷으려는 보현을 제지하며 그는 승찬을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보현을 소파에 앉히고 그 옆에 앉은 지호는 많이 야위어버린 그의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여기저기 긁히고 굳은살이 박힌 손이었습니다.

"언니, 이렇게 나와도 돼요? 더 쉬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걱정도 팔자야. 의사가 여기서 더 좋아질 수가 없다, 건강한 사람이 왜 비싼 병원비 내면서 놀고 있냐 그랬다구요."
"돌팔이 아니에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각성자 병원 많이 없잖아요."

오랜만에 들으니 더욱 적응이 안되는 그의 농담에 지호는 인상을 찡그렸습니다. 균열을 통과할 때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을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 더욱 마음에 걸려 손을 억세게 잡았습니다.

"저는 지호 씨가 더 걱정이에요. 피부 거친 것 좀 봐."
"……어떻게 안된다고 그러더라구요."

오른손은 물론 몸의 절반을 뒤덮기 시작한 비늘은 날씨가 조금만 추워져도 금새 갈라져 진물이 흐르곤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크림을 발라도 임시방편일 뿐이었으니 말이죠.

"그래도 괜찮아요. 수트에 젤 같은 거 바르면 꽤 오래가요."
"수트 입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일 중독이에요, 그거."
"헌터인걸 어떡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하지 말걸 그랬어요."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툴툴대는 지호를 다정하게 달래며 보현은 갈비찜을 하나 집어먹었습니다.

"준우가 해준 것 보다 괜찮네. 지호 씨가 했어요?"
"거의 아저씨가 했고 전 옆에서 썰기만 했죠."
"그러고보니까 승찬 씨랑 사이 좋네요. 잘 지내요?"
"아저씨야 뭐, 잘 지내죠. 밑에 층에 살아요."

히죽 웃으며 보현은 지호를 바라봤습니다. 이상한 느낌에 슬쩍 멀어지려 하니 그가 손을 꽈악 쥐어 도망치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거 말고. 둘이 잘 지내냐구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에이, 뭘 아니야. 다 큰 남녀 둘이 한 지붕 밑에서 사는데 아무런 일도 없다구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진짜? 승찬 씨한테 문제가 있네, 그러면. 있어봐요. 내가 한 소리 해주고 올게."
"언니, 진짜. 앉아있어요!"

어디서 그런 활기가 남아있는 지 모르겠는 속도로 보현이 부엌으로 뛰어들어가고, 지호가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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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할까요."
"사람들을 조금 부르지. 복잡하긴 하겠지만, 효과적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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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숙취때문에 치료기에 들어간 기분은 어때요."
"죽겠어요."

치료기 안. 보라색 파장을 머리에 쐬며 지호는 끙끙 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승찬이 바닥을 꺼뜨릴 기세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내가 적당히 먹으라고 했죠?"
"분위기에 취해서……."
"분위기 같은 소리 하시네요."
"처음 마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자제할 수 있을 줄 알았죠."

승찬의 얼굴이 한 순간 구겨지더니, 이내 다시 펴졌다.

"자제는 무슨. 까딱하면 또 사고칠 뻔 했어요. 알아요?"
"그때는 진짜 처음 마셨으니까……."
"네, 친구분들이 말리지 않았으면 건물이 날아갔겠죠. 그 이후로 술 안마시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생일날 정도는 봐줘요……. 머리 지끈거리니까 잔소리 하지 좀 마요."

지호가 이마를 짚으며 일어나려 하자 퉁, 하고 승찬이 손바닥으로 치료기를 때렸다.

"누워 있어요. 잠이나 자요."
"그치만, 뒷정리는 해야……."
"제가 할게요. 술취한 사람 데려다가 정리 시키면 잘도 되겠어요."

신음소리를 내며 지호는 다시 치료기에 몸을 뉘였다. 손닿는 곳에 마침 페트병 하나가 있길래 들어보니 물이 담겨 있었다. 한 모금 마시고 난 그는 몸을 옆으로 돌려 승찬을 향했다.

"아저씨. 그래도 생일상 이렇게 받으니까 좋네요."
"지호 씨 덕에 이렇게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다들 지호 씨 한테 고마워 하고 있어요."
"에이, 언제적 얘기를 하고 그래요."
"전 항상 고마워 하고 있어요. 고마워요, 지호 씨."

보라색 빛 속에서도 새빨개진 얼굴을 한 지호는 앓는 소리를 하며 몸을 반대쪽으로 뉘였다. 머리가 울리는 것이 술때문은 아닐 것이다. 
한참을 끙끙거리던 그는 다시 몸을 돌렸다. 거기엔 여전히 인상을 구기고 있는 승찬이 보였다. 여전히 애취급을 하는 모습에 어쩐지 그는 마음 한 켠이 영 갑갑했다.

"잘래요. 이번 달 월세는 특별히 깎아준다."
"주무세요. 뒷정리 해놓고 갈게요."
"네, 고마워요, 아저씨."

지호가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하는 숨소리가 치료기 너머까지 들려오자 승찬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료기의 화면에선 바이탈사인처럼 일정한 주기로 신호가 들쭉날쭉하게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안정적인 파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한 승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한참이나 찡그리고 있다가 눈을 뜬 그는 뒤를 돌아봤다.

"잠들었어요."

Posted by B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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