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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1.14 [귀령 2차 창작] 죽은 이들의 뒤에서 (2)

스 포 일 러 주 의 !

※ 본 팬픽은 네이버 시리즈에서 활동하시는 월하야담 님의 '귀령'을 바탕으로 한 팬픽입니다.

해당 소설의 결말, 또는 전개에 대한 내용이 있으므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귀령' 2부의 결말을 읽지 않았거나, 해당 소설을 읽으실 예정이라면 본 팬픽을 읽는 것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 *

납골당에서 나온 건우는 흡연실을 찾아 들어갔다. 흡연실 안에는 환풍기가 작동하지 않는지 매캐한 담배연기들이 자욱하게 쌓여있었다. 빈속에 숨을 쉴 때 마다 담배연기가 쌓이니 또다시 구역질이 치솟았다.

"큭……!"

쓰라린 위액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불쾌했다. 간신히 참아낸 건우는 가래와 함께 쓴물을 뱉어냈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옆에서 불쑥, 하고 무언가가 내밀어졌다. 옆을 보니 중년의 여성이 건우를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물병 하나가 손에 들려져 있었다.

"아, 아뇨……그……."
"괜찮으니까 드세요. 많이 힘드시죠?"

어서 받으라는 듯이 페트병을 흔드는 여성에게서 물병을 받았다. 방금 막 구매했는지 차가운 감각이 손바닥 위에 시리도록 느껴졌다. 잠시 물병을 바라보던 건우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 어머님도……."
"저는 저희 어머니 49재셔서요."
"아, 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건우에게 손을 내저으며 여성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그것에 화답하듯 건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감사합니다."

건우는 페트병의 뚜껑을 열어 차가운 물을 마셨다. 빈 속이 찬물로 채워지는 감각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여성은 페트병을 비워가는 건우를 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ㅡ치익, 치익. 스읍, 후.

짙은 담배연기 한줄기가 흡연실을 메웠다. 건우 역시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뒤적거렸다.

"……잃으신 지 얼마 안됐나봐요."

담배를 찾던 건우는 멈추고 여성을 쳐다봤다. 여성은 안쓰러운 눈으로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잡았던 담배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부모님을 뵈러 왔습니다. 그리고……."

건우는 처연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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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실 옆의 공원 벤치. 둘은 통성명을 했다.

여성의 이름은 이주연. 고등학생 아들을 둔 그녀는 혼자 어머니의 49재를 위해 찾아왔다가 너무 괴로워하고 있어 보이는 건우를 보고는 아들 생각이 나 그를 도와주러 온 것이다.

"그런데 남편분이나 자녀분들은……."
"저 혼자 왔어요. 애가 수능이 코앞이라서."

아직 4월이건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주연의 말에 건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중요할 시기니까요. 일분일초도 맘대로 쓸 수 없죠."
"……네."
"그럼 건우 씨는……."

조심스럽지만 그의 사연이 궁금하다는 시선. 남들이 보기에는 실례가 아닐까 하지만 어째선지 건우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털어놓고 싶을 정도였다. 그것으로 자신의 마음이 가벼워진다면야.

"……그, 결혼……하려고 했었던 사람입니다……."
"아……."

첫마디를 떼는 것이 어려웠을까.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점점 더 말이 많아지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신에 대한 건 말하지 못하다보니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주연은 별로 개의치 않다는 듯이 따로 물어보는 낌새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부분은 본인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머나'라던가, '세상에'라던가, '어쩜 어쩜'이라던가. 수많은 추임새를 넣어가며 이야기를 듣던 주연은 손수건을 꺼내 눈시울을 닦았다. 어느새 축축해진 손수건을 곱게 접어 핸드백에 넣은 주연은 건우의 두 손을 꽈악 잡았다.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밥도 안드신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입맛도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여기 앞에 가서 국밥이라도 꼭 드셔야돼요."
"……예.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걱정스럽다는 듯이 건우를 보던 주연은 시계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요, 내가 밥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애들 점심시간이라."
"아닙니다. 마음만으로도 제가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꼭 드셔야돼요!"

그렇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한 주연은 공원길을 걸어나갔다. 건우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흡연실로 다시 들어왔다.

주머니에 구겨져있던 담배를 꺼내 물고는 라이터를 찾았다.

"남편 분 하시는 사업 잘 되시고……. 아드님도 좋은 대학 가시고……. 손녀는 이른 시기에 보니까 너무 아드님한테 화내지는 마시고……."

오랜만에 대화를 해본 탓인지 조금 흥분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장님네 부부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사람과 대화를 한 것 만으로도 어쩐지 조금은 기운이 났다.

저 멀리엔 여전히 주연이 오솔길을 걸어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웃음이 흘러나왔다.

라이터를 찾은 건우는 담배에 불을ㅡ.

"……어?"

ㅡ붙일 수 없었다.

방금 뭐였지? 건우는 담배를 떨어뜨리고는 입을 가렸다. 그러나 한번 움직인 입술은 멈출 수 없었다. 아니, 그건 자신의 힘으로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틀어막은 손의 틈새 사이로 무언가가ㅡ.

"무, 무, 무병장수 하니 조상님 덕이요……만사가 형통하니 쌓아온 덕이요……지금처럼만 지내면……대대손손……!"

그는 흡연실을 뛰쳐나와 공원의 오솔길을 따라 뛰어갔다. 저 멀리엔 여전히 주연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수다를 떠는 주연의 몸이 뒤로 돌며 건우를 쳐다봤다. 놀란 듯 커다래진 눈동자가 건우의 눈에 들어왔다.

"거, 건우 씨?!"
"으아아아아악?!"

그러나 소리를 지르며 놀란 것은 오히려 도건우였다. 꼴사납게 주연의 앞에 넘어진 건우는 덜덜 떨면서 주연을 바라봤다.

아니, 주연이 아니다.

"아, 아, 아……!"

놀란 채 굳어버린 주연의 바로 뒤에, 두 노인이 손을 맞잡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어쩐지 주연과 닮았다.

아니, 주연이 저 둘을 닮은 것이다.

"저, 저기……괜찮아요?"

손을 내밀며 다가오는 주연. 그리고 그에 맞춰 한 걸음씩 다가오는 두 노부부.

인자해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 인자함은 공포로 다가올 뿐이었다.

"오, 오지마!"

건우는 주연을 지나쳐 도망치듯이 납골당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눈에 띄는 하얀 트럭에 올라타고는 시동을 걸었다. 끼기긱 하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리고 그는 납골당을 빠져나왔다.

Posted by B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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