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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2.15 [그 드라마의 15화 2차 창작] 그리움을 그리워한다 (2)

스 포 일 러 주 의 !

 

※ 본 팬픽은 문피아, 네이버 웹소설에서 활동하시는 밀렘 님의 '그 드라마의 15화'를 바탕으로 한 팬픽입니다.

 

해당 소설의 결말, 또는 전개에 대한 내용이 있으므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드라마의 15화'의 결말을 읽지 않았거나, 해당 소설을 읽으실 예정이라면 본 팬픽을 읽는 것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 *

 

"반갑습니다, 오늘 작가님. 잘 부탁드려요."
"네. 잘 부탁드려요……."

 

인터뷰를 위해 회의실로 가니 이미 인터뷰 준비가 끝나있었다. 여기저기에 설치된 조명판과 카메라, 그 한가운데에 있는 새하얀 테이블. 의자에 앉아 인터뷰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가 날 발견하고는 고개를 숙이는 김성훈 기자. 그리고 인터뷰 전에 코디네이터의 손에 이끌려서 마구잡이로 정리된 머리와 옷까지.
어색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지만, 사무실 사람들은 날 보고는 입을 떠억 벌렸다. 사진 찍지 마요, 부장님.

 

"그러면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네, 그……. BUILD THE EARTH의 시나리오 작가인 오늘입니다……."
"빌드 더 어스. 줄여서 빌더쓰로 불리고 있는데요. 우선 이것부터 여쭤봐야겠죠. 마지막화 방영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사람들의 반응이라. 김성훈 기자님, 당신도 우리 회사 직원이면 알텐데요.

 

"뭐……. 예상대로의 반응이었어요……. 시청자 게시판에서 제 이름이 나오지 않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요……."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어요."
"그래도 그만큼 빌더쓰를 사랑해주셨다는 거니까요……. 그래도 심한 욕은 안해주셨으면 하는데……."

 

약간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에 대해 법적조치를 취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개중 일부는 이미 법무팀이 고소를 준비하고 있었고.

 

"네, 드라마를 사랑해주시는 것도 좋지만, 작가님 역시 사람이란 점, 그리고 상처받는다는 점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꼭 좀 부탁드릴게요……."
"자, 그럼 화제를 바꿔서.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에 대해 말해볼까 해요. 먼저 주인공인 손성우. 인간의 영웅인 우투리에 대해서."

 

손성우. 무지개빛 날개를 지닌 인간의 영웅. 그리고 우리 촌스러운 이름의 주인공.
처음에는 이런저런 영웅들이 무작위로 선별됐지만, 부장님이 '야, 우투리! 이름 웃기네!'라 하면서 우투리가 됐다.

 

"손성우는 사실 고민이 많았어요……. 특히 우투리라 그러면 조금 촌스럽다는 이야기도 있었구요……. 그, 발음이……."
"확실히 그렇죠. 그래도 그런 반응은 쏙 빠졌죠? 진짜 멋지게 등장했잖아요. 솔직히 날개라 그러면 촌스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멋졌잖아요."
"아, 날개요……."

 

'작가님, 날개요? 무지개 날개요? 진짜 이대로 가요?'
'저는 말렸는데……. 부장님이…….'
'아아아아악!!!! 개부장!!!!!'

 

난 정말로 말렸다. 그러니 그런 눈 하지 마요, 편집팀 여러분. 내 탓이 아니에요. 여러분의 야근은 부장님 탓이에요.

 

"중국의 손손TV랑 컨텍이 되면서 그쪽 자본을 많이 받은 덕이죠……. 내년 3월부터 단독으로 중국에도 방영되니까요……."
"중국 쪽에서도 이미 광고가 나가고 있죠? 사람들의 반응이 정말 좋던데요! 네티즌들은 벌써 성우 캐스팅을 예측하고 있는데, 오늘 작가님도 보셨나요?"
"네. 정말 쟁쟁한 분들만 올라오더라구요……."

 

응, 정말이다. 그 중에는 할리우드 배우도 있고. 무서운 점은 정말 캐스팅 할 것 같다는 거지.

 

"자, 다음으로 박제영! 박서원 씨가 너무 잘 연기해주셨죠? 그리고 마지막에 뒤통수를 당한 호구 악역이죠."
"아하하……."

 

그리고 내가 욕을 먹고 있는 이유지.

 

"마지막에 그렇게 끝내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음……. 박제영의 업이라고나 할까요……. 나쁜 놈이니까 말이죠…….
"그렇다고 해도 말이죠. 너무 허무하게 끝났다구요?"
"이건 비밀인데……."
"응? 뭔데요?"
"빌더쓰, 시즌 2가 준비되면서 말이죠……."
"시즌 2요?!"

 

기자님. 티나요. 알고 있었잖아요. 그럼에도 성훈은 촬영거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부담스러운 연기를 하고 있었다.

 

"와! 시즌 2! 그걸 위한 포석이었군요? 어쩐지 너무 떡밥들이 안풀린다 했다구요!"
"아직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말이죠……."
"좋네요, 시즌 2. 좋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박제영에 대해서 더 여쭤보고 싶은데요……."

 

* * *

 

"자, 시즌 2를 위하여!"
"위하여!"

 

거칠게 유리잔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빌더쓰 시즌 1의 모든 마무리가 끝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혹은 부장님이 집에 가고 싶지 않아서, 회사 앞 소곱창집에서 회식이 열렸다.
그렇다, 소곱창이다. 평소같았으면 근처 삼겹살집이나 갔을텐데 말이다. 부장님도 대단하신 분이다. 어떻게 국장님한테서 카드를 받아올 생각을 한 거지?

 

"오늘 씨도 오늘 고생했어. 오늘이 오늘 고생……푸하하핫!"

 

그래도 사회인답게 웃어넘기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웃어넘기기로 했다. 뭐, 소곱창 사주는 사람이니 너그럽게 웃어줘야지. 아니, 아니다. 소곱창의 문제가 아니다. 아, 부장님.
사실 지금 무슨 얘기를 들어도 웃음이 나올 것 같지만 말이다. 아, 제기랄! 사람이 행복하면 욕이 나온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고생하셨어요, 오늘 작가님."
"……아니에요, 요운 씨. 저희 부장님 때문에 괜히 오셔서……."

 

손요운. 손요운! 손요운!!! 손요운을 부르다니요, 부장님!! 거기다 손요운이 내 옆에 앉다니! 부장님, 평생 사랑할게요!!!

 

"아니에요. 마침 근처에서 촬영이 있어가지구요. 겸사겸사 들른거죠."

 

아, 배려심도 너무 멋져.
평소에는 일할 때 각본만 주고 설명만 하다보니 사적으로 볼 일이 없었으니까. 이 참에 눈호강도 좀 하는거지. 그러니까 미안해요, 한나 씨. 차장님 옆에서 그렇게 째려보지 마요.

 

"그런데, 작가님. 인기검색어 오르셨더라구요."
"아……. 네……. 마지막화 이후로……."
"그래도 시즌 2 나오면 다시 한 번 인기검색어에 오르실테니까요."

 

아직 개요도 없는 시즌 2 말이죠. 고마워요, 요운 씨. 덕분에 부담감이 늘었어요.
한숨을 내쉬는 날 보더니 요운이 내 빈잔을 채워줬다. 나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은 뒤, 요운의 잔 역시 채워줬다.
챙,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잔을 부딪히고, 절반정도를 마셨다. 식도가 뜨겁게 달궈지는 것이 느껴졌다. 요운은 운전을 해야했기 때문에 그대로 술잔을 내려놓았다.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맞다, 요운 씨……. 그러고보니 내일 인터뷰 있으시죠……?"
"아, 네. 그것때문에 사실 작가님한테 여쭤볼 게 있었는데. 서원 씨도 데려올 걸 그랬네."

 

요운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안타깝다. 꿀에 꿀을 바른 호강을 할 기회였는데.

 

"제가 서원 씨한테도 말하면 되니까요. 아무튼. 빌더쓰 시즌 2에 관한건데요. ……작가님, 괜찮으세요?"
"네, 네, 네……. 괘, 괜찮아요……. 마, 말씀, 하세요……."
"……내일 물어볼까요? 말을 막 더듬으시네. 술 원래 약하세요?"
"아, 아니, 에요……. 괜찮, 아요……. 마, 말씀, 해, 해주세요……."
"작가님……. 일단 바람이라도 쐬실래요?"

 

……뭔가 이상하다. 이제 2잔 마셨을 뿐이다. 내 주량이 1병이니 절대로 취할 리 없다. 나는 요운의 말대로 천천히 일어나 곱창집 바깥으로 향했다. 요운이 뒤에서 양해를 구하고는 내 어깨를 부축해줘 쉽게 나올 수 있었다.
바깥은 찬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었다. 눈이라도 내리려는 걸까? 하늘도 구름이 잔뜩 껴 보이는 것이 영 찝찝했다. 건물 벽에 기대고 서 있으니 요운이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끼고 내 옆에 마주섰다. 비록 길거리에 사람은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조금 괜찮아요?"

 

요운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원래 이러지 않는데……."
"괜찮아요. 몸이 안좋을 수도 있죠."
"그래서……. 하려던 말씀이 뭐였죠……?"
"네, 그, 빌더쓰 시즌 2요."
"아, 아, 네……. 시, 시, 시즌 2요……."
"작가님?"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해온다. 도대체……?

 

"……작가님?"

 

나를 다시 부축하려는 요운에게 손을 내저었다. 더 이상 저런 국민배우랑 붙어있다가 들키면 무슨 꼴이 날 줄 알고.

 

"그냥, 이, 이, 이 상태, 로……."
"……그……. 내일 인터뷰 때문에요. 시즌 2는 어떤 방향으로 쓰실건지……."
"시, 시즌 2, 는……아, 아직 구, 상만 하, 하고 이, 있어요……. 주, 주, 주역을, 교체, 하, 할까, 도, 고, 고민 주, 중 이구요……."
"작가님, 이대로 들어가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제가 한석영 부장님께 말씀드릴테니까……."
"주, 주역으, 로는……뒤, 뒤통수 친 그, 그, 그 새끼로……."

 

요운이 내 어깨를 강하게 움켜쥔 채로 부축해 길거리로 데려가려 했다. 택시라도 잡아주려는 거 겠지. 마음이 불안하다. 나는 손목에 찬 묵주를 손가락으로 굴려…….

……묵주? 그런 게 있었나? 항상 손목에 차고 있던 아버지의 유품……. 아니, 무슨 헛소리야. 멀쩡히 살아계신 분한테 무슨…….  

머리가 지끈거려오기 시작했다. 깨질 듯이 아파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을 거치지도 않고, 무언가가 끊임없이 입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마치 천기누설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 새, 새끼 이름이……그, 그, 그러니까, 저, 정수혁 씨 배, 배, 배역, 이름, 이……."
"알겠어요, 그 새끼고 저 새끼고 정수혁 씨고 일단은 댁에 돌아가셔서……."

 

무언가가 깨져간다. 어디선가 쨍그랑, 하는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마치 경고라도 하듯이 거칠게 깨져간다.
그러나, 그 모든 소리들이 사라져가고, 묻어져가고, 잊혀져간다.

 

마치 우리 모두의 '추억'처럼…….

 

"저, 정, 해, 준……."

 

우뚝.
그래, 우뚝, 이란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요운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네?"

 

그리고 나는.

 

"……작가님?"

 

'나'는.

 

"……오늘 씨?"

 

그리고 '그'는…….

 

"설마……!"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요운을 바라봤다. 그 자리에는…….

그 자리에는……무지개가 떠 있었다.

Posted by B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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