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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11.24 [귀령 2차 창작] 죽은 이들의 뒤에서 (1)

스 포 일 러 주 의 !

 

※ 본 팬픽은 네이버 시리즈에서 활동하시는 월하야담 님의 '귀령'을 바탕으로 한 팬픽입니다.

 

해당 소설의 결말, 또는 전개에 대한 내용이 있으므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귀령' 2부의 결말을 읽지 않았거나, 해당 소설을 읽으실 예정이라면 본 팬픽을 읽는 것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 *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한 납골당.


자욱한 향과 기도하는 소리가 그 안을 가득 메운 곳에서 한 청년이 유골함 앞에 엎드려 있었다.
한참이나 절을 한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고개를 푹 숙이고는 그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 어머니. 저 건우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왔습니다."


무뚝뚝함이 묻어나오는 말투로 건우는 안부인사를 올렸다.


이윽고 메고있던 배낭에서 북어포, 사과, 배, 청주 한 병을 꺼내 유골함 앞에 있는 작은 상 위에 차렸다.


조촐한 차례상이었지만 상이 작아서 그런지 한가득 차 보였다.


향을 꽂아 넣은 후,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타닥, 하는 소리와 함께 향불이 피어올랐다. 아찔한 향내가 건우의 코를 찔러왔다.



"준비한 게 이것 뿐이라 죄송합니다. 다른 건……준비할 수가 없더라구요."


건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턱을 쓰다듬었다. 자른 지 얼마나 됐는지, 거칠거칠한 감각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원래라면……."


입술을 잘근 씹었다. 울컥하는 마음이 한 순간 피어올랐다가, 그것을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깊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나니 허전한 마음만 가득해졌다.


"원래라면……신부감도 데려왔을겁니다."


그 순간, 치밀어 올라오는 구역질에 건우는 화장실로 뛰쳐들어갔다. 변기통에 주저앉아 안에 든 것을 쏟아내려 했지만, 나오는 것은 허여멀건한 위액 뿐이었다. 최근 며칠동안이나 먹은 것이라곤 물밖에 없었으니까.


얼마나 토악질을 해댔는지, 쓰라린 속을 감싸며 건우는 변기 앞에 주저앉았다. 더러운 화장실 바닥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의 인생은 밑바닥까지 떨어지고야 말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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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겠다고 그렇게나 다짐했다.


언제나 옆에 있는 범으로서 살겠다고 그렇게나 다짐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스러져 간 해원보살님 앞에서, 자신을 아들처럼 아껴주던 이장님 앞에서,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금화보살님 앞에서 그렇게나 다짐했다.



그랬는데.



결국 건우는 거대한 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범은 무슨, 영지의 놀림대로 그는 기껏해야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태상장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결국 하연은 건우에게 산군의 기운을 씌우고, 그는 온 몸에 쏟아지는 기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이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눈을 허옇게 뒤집어 깐 만덕이 기절해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온 몸의 근육이 모조리 끊어진 듯한 고통이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그는 차디찬 흙바닥에서 피거품을 내뿜으며 꿈틀거릴 뿐이었다.


'선녀님.'


그 격통 속에서 든 생각에 건우는 어기적 어기적 기어서 몸을 돌렸다. 자갈들이 상처를 긁을 때 마다 비명을 내지르며 그는 세암당을 바라봤다.


그리고 배를 끌어안은 채 쓰러져있는 하연을 봤을 때.


"아……아아……!"



신경을 찢는듯한 고통 속에서 그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연을 향해 기어갔다. 손톱이 뜯겨나가고, 뺨이 갈려나갔다.
그렇게 간신히 세암당의 툇마루에 올라왔을 때.


"안돼……안돼, 안돼, 안돼, 안돼……!"


그는 하연을 천천히 끌어안았다. 힘이 모조리 빠져버린 사람 특유의 무게가 그를 짓눌렀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가볍던 하연의 몸이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선녀님……선녀님, 눈 좀 떠보십시오……선녀님……!"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마치 길디 긴 잠을 자듯이, 하연이 추욱 늘어졌다. 건우는 먹물과 핏물이 뒤섞인 하연의 손을 기도하듯이 꽈악 붙잡았다. 그러나 따스했던 그 손은 마치 흙바닥처럼 거칠고, 차가웠다.



"선녀님……다 끝났습니다……다 끝났다구요……이제 일어나셔야죠……."


언제나 빨갛던 볼은 핏기가 빠져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그는 하연의 가슴에 귀를 댔다. 또, 볼록하게 올라오기 시작한 그녀의 배에 귀를 댔다.
들려오는 것은 고요뿐이었다.


"선녀님……! 이화선녀님!"


그는 마구잡이로 하연의 몸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 감긴 눈은, 떠질 줄 몰랐다.


"하연아아아아아!!!!!!!!!"


그렇게, 이제서야 피어나기 시작한 꽃은.
그렇게, 져버리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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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뭘 해야 할까요……?"


간신히 구역질이 멈춘 건우는 다시금 부모님의 앞에 섰다. 미친 듯이 찾아간 금화당의 전안에서, 신장칼을 움켜쥔 채 목을 매단 만덕의 시신을 본 그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세암당으로 갈 수도 없었다. 서울에 있던 그의 집은 팔아넘긴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며 편히 쉬지도 못한 채 그는 그저 숨만 붙어 살아있었다.


그래, 살아있었다.


오직 그만이 살아있었다.


가족도, 연인도, 아이도, 복수할 대상마저 잃어버린 채, 그는 살아있었다.


"왜 제가 살아있는건가요……?"


대답없는 물음에, 그저 향불만이 타오를 뿐이었다.

Posted by B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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