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날, 한 옛날, 왕국의 성에서 공주님이 태어났습니다. 앙증맞은 손, 귀엽게 찡그린 눈, 오밀조밀한 입. 한 눈에 봐도 아름다운 아이로 자랄 것 같았습니다.
왕은 기뻐하며 공주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러자 그게 놀랐더 걸까요? 공주는 으앙, 하고 큰 소리로 울어버렸답니다. 왕도, 왕비도, 성 내의 모든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듣고 기쁘게 웃었습니다.
공주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새하얀 피부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와 같고, 검은 머리칼은 밤하늘과도 같았으며, 붉은 입술은 작고 조밀해서 앵두와도 같았습니다. 어린나이에도 가지고 있는 기품은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했고,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공주는 그 기품에 깊이를 더해갔습니다.
공주는 모든걸 배웠습니다. 승마, 교양, 정치, 예술 등등 공주의 아름다움을 더욱 가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수십번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니 그녀는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내려놓았던 펜을 다시 손에 꼬옥 쥐었습니다.
물론 무도회도 빠질 수는 없었습니다. 공주는 나가는 무도회마다 모든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춤을 추었습니다. 귀족들의 어린 자제들은 그녀와 말 한마디 섞어보려고, 손 한번 잡아보려고 안달이 났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공주는 한쪽 눈을 찡긋여 주었고, 얼굴이 화끈해진 그들은 쪼르르 어머니께 달려가 큰 소리로 '저는 공주님하고 결혼할래요!'하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어머니들은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공주는 아가씨가 되었습니다. 공주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성 밖에 줄을 선 사람들은 성을 한 바퀴 두를 정도로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공주는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태양과도 같은 미소 하나에 나라의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공주의 외모는 나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런 소문이 들려오면 공주는 이불을 덮고 슬며시 웃었습니다.
무도회에서 공주는 단연 돋보였습니다. 새초롬한 눈매로 한 번 웃어주기만 하면 청년들은 침을 줄줄 흘리며 그녀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녔습니다. 우연치않게 춤이라도 한 번 추는 날에는 헤벌쭉 한 미소를 짓다가 스텝이 꼬여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조심해야 했습니다. 신사랍시고 손등에 키스를 해주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손등이 닳지나 않을까 하기도 했습니다.
나라의 꽃다운 처녀들은 공주를 질투했고, 부러워했습니다. 나라의 꽃다운 총각들은 공주를 원했습니다. 하루에도 수천번씩 수백명이 꽃다발을 내밀었고, 수만명이 성 밖으로 내쫓겼습니다.
그러면서도 공주는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숙일 줄 알고, 손을 내밀 줄 알고, 웃을 줄 알았습니다. 가엾은 사람을 보면 먹을 것을 베풀고 그 고운 손으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왕과 왕비는 그런 공주가 그저 자랑스러웠습니다.
어느덧 공주는 성숙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외모와 풍만한 가슴, 얇은 허리에 쭉 뻗은 다리는 길을 걷던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녀가 걸을때마다 가볍게 살랑이는 검은 머리결은,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붉은 입술은, 그녀가 웃을 때 마다 빛나는 피부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그녀만의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도 커다란 문제가 생겼답니다. 바로 결혼이지요. 과연 공주님께 어울릴만한 왕자님이 있을까요? 성의 사람들은 모두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중, 한 신하가 그 후보로 이웃나라 왕자님을 말했습니다. 그가 말하길 왕자님은 공주님께 어울릴 정도로 수려한 외모와 맵시, 그리고 훌륭한 성품을 지녔다고 말했습니다. 왕과 왕비는 그 왕자님을 떠올리고는 그 신하에게 큰 상을 내렸답니다.
그러나 공주는 내심 회의적이었습니다. 결혼에 대한 불안감때문이었죠. 자신이 과연 한 남제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뛰어난 왕자님이라면 더더욱 자신이 시집을 가선 안되는 것 아닐까요? 그녀는 아직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말이죠.
그러던 어느 날, 이웃나라의 성에서 무도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왕과 왕비는 공주를 무도회에 보내려고 야단이었습니다. 공주를 위한 드레스, 구두, 왕관과 마차까지. 그야말로 공주를 위해서라면 성도 바꿔줄 기세였습니다.
공주가 사뿐히 마차에 올라타자, 마부는 말에게 '이랴!'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말들은 가볍게 울고는 이웃나라를 향해 떠났습니다.
부드럽게 달리는 마차 안, 공주는 설레임과 기대감에 들떴습니다. 한편 불안감과 초조함에 떨었습니다. 처음으로 가는 이웃나라, 그곳은 어떤 곳일까요? 그리고 왕자님은 어떤 분일까요?
이웃나라의 길에는 공주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주의 외모에 대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습니다. 과연 공주님이 그 잘생긴 왕자님께 어울릴 만한 여자일까 하면서 말이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세상 그 어떤 여자를 데려와도 왕자님께 어울릴 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없다고.
그리고 마차가 도착을 하자 사람들은 마차문이 열리기만을 기대했습니다. 마부가 내려와 문을 열자, 그 안에서 공주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공주의 외모를, 품격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입을 쩍 벌린채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또각, 또각하는 구두소리만이 들려왔습니다.
공주가 성 안으로 들어가고 한참 뒤,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질렀습니다. 그리고는 공주의 외모를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왕자님께 어울리는 공주님이 나타난겁니다!
무도회장 안, 수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며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의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 떠올라 있었습니다. 음악소리는 흥겹고, 음식은 맛있고, 춤은 흥겨웠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무도회를 즐기는 가운데, 오직 한 사람, 왕자님만이 뚱하게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는 옆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도 건성으로 듣고, 그의 앞에 차려진 한가득의 음식들도 깨작거리고는 물려버리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아까부터 오직 단 한가지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공주였습니다. 이웃나라 공주의 소식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아름답고, 청초하고, 우아한 그녀를 칭찬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물릴 정도로 들어왔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흥미없게 듣고 있었지만, 내심 그는 공주를 보고싶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오늘, 바로 이곳으로 온다는 겁니다. 그는 사실 들떴습니다. 드디어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리고 무도회장의 문이 열렸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문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곳에서 멈췄습니다. 음악소리는 멈추고,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고, 춤을 추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멈췄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감히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또각, 또각. 구두소리는 회장을 메웠고, 공주는 우아하게 무도회장을 가로질러 가 왕자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왕자 역시 자세를 고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앞에 섰습니다. 공주는 공손하게 왕자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왕자 역시 웃으며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공주는 수줍게 손등을 내밀었고, 왕자는 가볍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림과도 같은 풍경에 사람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다시 흥겨운 음악이 시작되고, 왕자와 공주는 회장의 가운데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사뿐하게, 우아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그 풍경은 수많은 화가들이 화폭에 담았고, 시인들이 글자로 표현을 하고, 음유시인들이 목청껏 노래를 불렀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그 결과물들에 고개를 저을 뿐이었습니다. 그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춤이 끝나고, 왕자와 공주는 자리를 옮겼습니다. 작게 꾸며진 방에는 조그마한 탁자와 침대, 그리고 등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왕자가 등을 키자 조금 어둡게 켜진 등은 고급스런 분위기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왕자가 의자를 빼주었습니다. 공주가 의자에 앉자, 다시 왕자는 의자를 끌여 넣어주었습니다. 탁자에는 와인과 약간의 안주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왕자가 자리에 앉고, 둘은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잔을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고, 둘은 둘만의 약속을 가졌습니다.
몇달 뒤, 왕자와 공주는 성대한 결혼식을 열었습니다. 두 나라의 백성 모두가 모인 결혼식에서 두 남녀는 서로의 행복을 서약했습니다. 두 사람의 키스와 함께 종소리가 울렸고, 그 종소리가 사라질때까지 사람들의 환호성은 사라질 줄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나 왕자는 왕의 자리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공주는 왕비가 되었습니다. 왕이 된 왕자는 지혜로운 정치로 만백성이 우러러보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왕비는 그런 왕을 조용히 뒷받침해주었으며, 때때로는 왕보다도 지혜로운 말을 속삭여주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백성들이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며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왕비가 5년째 임신을 못하기 전까지는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왕비의 배는 불러올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왕은 나라의 용하다는 의사들을 모두 데려왔지만, 왕비는 여전했습니다. 왕은 몹시 괴로워했고, 그런 왕을 보며 왕비는 홀로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왕은 혼자서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습니다. 왕의 오랜 친구였던 7개의 산을 넘어에 있는, 7명의 난장이들을 만나러 간겁니다.
난장이들은 오랜 세월을 사는 만큼 인간의 지혜보다 더욱 깊은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보석들을 가지고 말이죠. 난장이들은 보석을 받고는 흔쾌히 질문에 답했습니다.
"그건 악마가 왕비의 영혼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비는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된거죠. 그 악마를 왕비에게서 없애는 방법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왕비도 아이를 가지게 되겠지요. 그러나 왕비는 언젠가 그 악마를 마주하게 될겁니다."
이어서 가장 나이많은 난장이가 말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 악마를 못알아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악마는 오직 왕비의 영혼만을 원하기 때문이죠. 악마란 한 사람의 영혼을 먹기 위해 사는, 비효율적인 멍청이들이니까요. 하지만, 그 멍청함이야말로 악마들이 무서운 이유지요. 어쩌시겠습니까, 왕이시여. 당신과 만 백성을 위해 왕비와 악마를 마주시키겠습니까? 아니면 사랑스런 왕비를 위해 아이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왕은 고민했습니다. 한 나라의 미래가 걸린 왕국의 아이와 자신의 사랑하는 왕비. 어느것도 저울질에 올릴 수 없는 커다란 문제였습니다. 왕은 서신을 보내 현명한 왕비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왕비는, 나라의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난장이들은 왕에게 그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그것을 왕비에게 전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보름달이 방 안을 비출 때에 왕비의 손으로 악마의 옷을 짜는 것. 그것이 난장이들이 말해준 방법이었습니다.
왕비는 엄숙하게 물레를 돌렸습니다. 신중하게 한땀한땀 옷가지를 짜 나갔습니다. 하얀 바탕에 검은 나무와 꽃으로 장식된 옷이었습니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옷을 짜던 그 때에, 구름이 순간 달빛을 가렸습니다. 갑자기 시야를 잃어버린 왕비는 실수로 손가락을 물레에 찔렸습니다.
붉은 핏물이 그녀의 손가락에 맺혀 또옥, 하고 떨어졌습니다. 왕비는 급히 손가락을 손수건으로 감쌌습니다. 손수건에 붉은 핏물이 번졌습니다.
그리고 구름이 지나가고 다시 달빛이 방 안을 환하게 비췄습니다. 왕비는 먼저 옷을 살폈습니다. 행여나 피가 옷에 떨어지지나 않았을까 하고 말이죠.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그녀가 짜던 하얀 옷은 어느새 붉은 실로 짠 듯 물들어 있었습니다.
왕비가 당황해 하고 있을때, 머릿속으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엄마."
라고.
한 순간, 그녀는 그 말의 주인공을 상상했습니다.
어린 공주님. 세상의 모든 사랑을 받고 자랄 귀여운 아이. 눈처럼 하얗고, 흑단처럼 검고, 핏물처럼 붉은. 왕비를 쏘옥 빼닮은 아이를.
그리곤 그녀의 눈 앞에 어여쁜 꼬마가 나타났습니다. 발 끝까지 오는 금발, 인형처럼 고운 외모와 붉은색 눈동자, 고운 다리와 그 끝에 있는 시커먼 털이 잔뜩 난 발굽. 꼬마는 왕비가 짠 붉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왕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꼬마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히죽, 웃었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깜빡인 왕비의 눈 앞에 있는것은 빈 받침대와 돌아가는 물레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왕비가 식탁에서 식사를 하던 도중이어습니다. 한창 식사가 무르익던 그 때, 왕비는 순간 입을 가렸습니다. 그녀의 속에서 시큼한 물이 올라왔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왕비와 눈을 마주친 순간, 왕비가 힘겹게, 그러나 환하게 웃었습니다.
"오오, 오오오오!"
왕은 그렇게 놀라워하며 왕비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모두가 박수를 쳤습니다. 왕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곱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수 개월이 흘렀습니다. 어느덧 왕비의 배는 산만하게 불러오고, 진통은 점점 더 심해져 오고 있었습니다. 산파와 왕, 그리고 많은 의사들이 숨을 죽인채 침실에서 왕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숭고하기까지 한 길었던 고통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왕국의 성에서 공주님이 태어났습니다. 앙증맞은 손, 귀엽게 찡그린 눈, 오밀조밀한 입. 한 눈에 봐도 아름다운 아이로 자랄 것 같았습니다.
왕은 기뻐하며 공주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러자 그게 놀랐더 걸까요? 공주는 으앙, 하고 큰 소리로 울어버렸답니다. 왕도, 왕비도, 성 내의 모든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듣고 기쁘게 웃었습니다.
공주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새하얀 피부는 금방 내린 하얀 눈과 같고, 검은 머리칼은 흑단나무와도 같았으며, 붉은 입술은 작고 조밀해서 핏물과도 같았습니다. 어린나이에도 가지고 있는 기품은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했고,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공주는 그 기품에 깊이를 더해갔습니다.
공주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왕비는 뿌듯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청초한 장미꽃처럼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은 흡사 왕비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 했습니다. 왕비는 항상 미소를 머금으며 생활했습니다. 공주가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공주의 성숙은, 곧, 왕비의 늙음이란 것을.
그날도 왕비는 평민으로 가장한 채 시종 두 명과 마을을 돌아다녔습니다. 여기저기서 공주를 찬양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그녀는 연신 싱글생글 웃으며 백성들의 사이를 거닐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의 눈에 어린아이들이 모여서 까르르 웃는 게 보였습니다. 그녀는 살며시 아이들의 옆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노래를 듣기 위해 왕비는 귀를 기울였습니다.
"늙은 장미 시들고 피는 장미 붉게 물드네. 늙은 장미 가시를 세우고 피는 장미 비웃네. 늙은장미야 조심하렴. 정원사가 화분을 버리기 전에!"
그런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은 하하호호 웃었습니다.
그러나 왕비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순간 다가가던 발이 멈칫 했습니다. 지금 저 아이들이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건가요?
설마, 설마요. 아니겠죠? 늙은 장미가 자신이고, 피는 장미가 공주인건가요? 아니죠? 그렇죠?!
왕비는 동의라도 구하려는 듯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시종 두 명이 키득거리며 숨죽인 채 웃다가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단 듯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이가 뿌드득 하고 갈렸습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늙은 장미 시들고 피는 장미 붉게 물드네. 늙은 장미 가시를 세우고 피는 장미 비웃네. 늙은장미야 조심하렴. 정원사가 화분을 버리기 전에!"
왕비는 그 길로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궁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사람들은 공주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늙어버린 왕비를 비웃는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그녀는 귀를 틀어막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노랫소리가 귀를 파고들었습니다.
그녀는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엎드렸습니다. 그녀가 너무 예민한 걸까요? 그냥 아이들의 노래였을 뿐일까요? 그저 조금 시간이 지나면 사그러 질, 그런것에 불과한 걸까요? 왜 그녀가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건가요.
나라를 위해, 왕을 위해, 가정을 위해 그녀가 안한게, 못한게 무엇이 있었던가요. 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습니다. 베개가 눈물에 축축하게 젖을 때 까지 그녀는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그녀는 눈가의 통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려왔습니다. 머리를 손으로 꾸욱 누르며 거울 앞에 섰습니다.
거울속 그녀는 눈이 퉁퉁 불어있었습니다. 눈물자국이 눈가에 그래도 남아 있었습니다. 눈가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며 머리를 쓸어올리던 중, 그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밤하늘처럼 검던 머리엔 은하수가 흐르고, 새하얀 종이같던 피부는 조금씩 구겨져 있었으며, 잘익은 앵두같던 입술은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방을 뛰쳐나왔습니다. 절대로 거울속 모습은 그녀가 아니라고 다짐하면서.
복도는 이미 해가 져서 어두컴컴했습니다. 어스름한 달빛만이 은은하게 복도를 비추고 잇었습니다. 그녀는 촛대를 찾아 들고 복도를 걸었습니다. 토각, 토각 하는 그녀의 발소리는 복도에 울려 퍼졌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인데, 왕은 침실에 없고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녀가 의구심을 가질 때, 바람이 불어와 촛불을 흔들었습니다. 그녀는 옷깃을 여몄습니다. 어디 창문이라도 열려있는건가 싶어 촛대를 멀리 든 순간, 저 멀리 공주의 방문이 슬며시 열려있는 게 보였습니다.
열린 문틈으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방 안을 살폈습니다. 아름답게 꾸며져있을 방은 밤의 어스름이 가려주고, 침대에는 살며시 부푼 이불이 덮여있었습니다. 공주는 곤히 침대에서 자고 있을 터입니다. 그녀는 딸의 자는 모습을 보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고운 숨소리를 내며 잠든 공주는 이불로 봉긋한 가슴을 가리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검은 머리칼은 그녀의 얼굴에 시냇물처럼 살며시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어린 공주의 뒤에, 그녀를 감싼 하나의 팔이, 이 나라를 지탱해온 굵은 팔이, 그녀의 남편이, 너무나도 편한 얼굴의, 공주의 아버지의 얼굴이, 훤히 드러낸 가슴팍이, 그의 발 밑엔 허겁지겁 벗어둔 옷가지들이.
왕비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느 누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그러함에도.
그녀의 머리는 이것을 이해해버렸습니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는 웃었습니다. 미친듯이 웃었습니다. 아아, 아아아! 그랬구나, 그랬었어! 시든 장미꽃은 버려져야 하는 법이지요! 그 자리엔 젊은, 싱싱한 장미꽃이 자리해야지요! 파릇파릇한 붉은 장미꽃이 있어야지요! 누가 시들어버린 장미꽃을 찾겠어요?! 안그래요?
그녀의 웃음소리에 왕과 공주는 화들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부여잡고 웃고있는 왕비를 본 그들은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왕은 허겁지겁 손으로 아랫도리를 가렸고, 공주는 이불로 몸을 감싸습니다. 왕은 최선을 다해 변명하려 했으며 공주는 우물거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요, 아니에요!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요! 그건 당연한 이치니까요! 화분에 시든 꽃이 있으면! 당연히 버려야지요! 네, 물론이지요!
그녀는 깔깔거렸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동화에 나올법 한 마녀와도 같아 왕과 공주는 겁을 먹었습니다. 이내 누가 뭐라할 것도 없이 그 방을 뛰쳐나간 그들을 보며 왕비는 그들을 비웃었습니다.
왕비가 문을 나섰을 때, 왕이 골목길에서 쿠당탕 하며 우스운 모습으로 넘어졌습니다. 그녀는 배를 잡고 깔깔 웃었습니다. 그 왕이 저렇게 추악하게 넘어질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녀는 왕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이, 이건 실수였어! 그냥 술김에, 그래! 술김에 저지른 실수였다고!"
왕은 미친듯이 손을 퍼덕였습니다. 추잡한 물건도 푸득거리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우스꽝 스러운가요. 그녀는 얼굴을 붙잡고 웃었습니다.
"왕이시여, 아아! 왕이시여! 어찌 이렇게나 추악해지셨나요? 당신의 딸년이 그렇게나 아름답던가요? 한 나라의 왕이? 제 남편이? 공주의 아버지로서 부끄럽지도 않던가요? 도대체 그 당당하던 왕은 어디 가고 이런 쓰레기만 남게 됬나요?"
왕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미안하단 말을 되풀이 할 뿐이었죠. 그러나 왕비로서는 그저 우스운 극이라도 보는 듯 했습니다. 그것도 3류 쓰레기 극 말이죠. 너무 쓰레기같아서 할 말도 없는 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쓰레기 극도 사랑한답니다. 재밌잖아요? 엉터리 극본을 가지고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자면 우스워 죽겠거든요.
그녀는 사랑하는 왕의 얼굴을 포근히 감쌌습니다. 벌벌 떨던 왕의 얼굴이 한츰 잠잠해졌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정원사님. 물론 제가 늙은 꽃이 되긴 했지요. 하지만, 단 한 마디면 된답니다. 자, 절 보세요. 그리고 당신의 딸을 보세요. 둘을 한 번 비교해 보시라구요. 네? 어서요."
그리고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설령 자신의 딸과 잔 추잡한 왕이라도, 자신을 버린 남편이더라도, 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용서할 수 있었어요. 네, 그게 바로 그녀였죠. 착한 어머니, 상냥한 아내, 존경받는 왕비. 바로 그녀랍니다.
그녀는 그에게 하나의 질문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건 누구죠?"
왕은 순간 주춤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매혹적이었고, 달콤했습니다. 진실만을 대답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는 진실을 말했답니다. 그녀라면, 아무리 마음에 안드는 대답이라도 용서해줄것이라 믿었습니다. 설령 그 대답이 왕비가 원하던 게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공주."
이렇게 대답하더라도 말이죠.
그리고 그 대답과 함께, 왕비는 미소를 거두었습니다.
그녀는 그 고운 손으로 왕의 목을 감쌌습니다. 손 마디가 하얗게 변할 때 까지 그녀는 그의 목을 졸랐습니다. 왕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부들거리던 왕의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이마엔 핏줄이 불룩 튀어나오고, 입에선 침이 줄줄 흘러 왕비의 손목을 적셨습니다. 버둥대는 왕의 얼굴은 마치 장미꽃처럼 붉었습니다.
장미꽃이 점점 파랗게 시들어 가자 왕비는 손을 놓았습니다. 왕은 숨을 못쉰 탓에 켁켁거릴 뿐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꺽꺽거리는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는 왕의 귓가에 왕비는 얼굴을 가까이 했습니다. 왕비의 달콤한 숨소리는 왕에겐 독향기로 느껴졌습니다.
"당신이 알아둘게 있어요, 정원사님."
왕비는 품속에서 은빛 막대기를 꺼냈습니다. 끝이 예리하고 손잡이엔 가시많은 장미가 그려진, 아름다운 은장도였습니다. 그녀는 손을 힘껏 위로 들었습니다.
"늙은 장미도 가시가 있단 거."
은장도가 은빛 호를 그리고, 왕비의 얼굴로 뜨뜻하고 끈적이는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왕의 숨소리는 순식간에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왕비는 그 손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몇 번의 호가 그려졌는지, 몇 방울의 피가 묻었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보세요. 깔깔거리며 웃는 그녀는, 하아,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그녀의 얼굴은 마치 새빨간 사과와도 같았답니다. 잘 익은, 독사과처럼 말이죠.
한편,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웃고있는 왕비의 모습을 본 공주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저것이 자신의 상냥한 어머니라니요. 저 '마녀'가 자신을 낳은 어머니라니요! 그녀는 머리를 감싸쥐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에 왕비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 자리엔 싱글생글 웃고 있는, 금발에 붉은 옷을 입은, 추한 발굽의 소녀가 서 있었습니다. 문득 왕비는 난장이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왕비는 언젠가 그 악마를 마주하게 될겁니다."
왕비는 뿌드득, 하고 이를 갈았습니다.
"너로구나! 너였어!! 네가 나의 악마였어!!!!!"
그녀의 고함소리에 경비병이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왕비를 본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쓰러져 있는 왕의 가슴엔 칼이 박혀있고, 왕비는 얼굴에 뚝뚝 떨어지는 피로 얼룩져 있었으며, 공주는 벌거벗은 몸으로 망연히 서 있었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본 경비병은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들은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니까요.
그런 와중에, 왕비는 그에게 소리쳤습니다.
"뭐하느냐! 저기 국왕을 시해한 역적이 있는데!"
그는 왕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거기엔 공주가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왕비를 보았습니다.
물론 그가 시키는 대로 일하기는 하지만, 그라고 생각없이 움직이는 허수아비는 아닙니다. 왕의 가슴에 박힌 은장도는 왕비의 것입니다. 피가 잔뜩 튄것만 봐도 왕비가 왕을 시해한 범인이란것은 자명한 사실이지요.
그런데도. 그에게도 그런 생각을 할 능력이 있는데도. 틀림없는 사실이 눈 앞에 있는데도. 그는 도저히 왕비를 살인범이라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왠지 아세요?
얼굴에 피칠갑을 한 왕비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거든요! 그들이 봐온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 그 어느때의 왕비님보다, 심지어 저 앞에 서 있는 나체의 공주님보다도 더욱 아름다워서! 너무나도 매혹적이라서! 왕비님의 모습을 본 그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네, 우스운 이야기지만, 사실 그는 왕비를 사랑하고 있었거든요.
그의 눈에 왕비는 천사로 보였습니다. 사랑스러운, 꼬집어 깨물어주고 싶을정도로 귀여운 천사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천사가, 살인이요? 말도 안되는 소리죠! 네, 그럴리 없다구요. 설령 왕비님이 왕을 시해했더라도, 그는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저 어여쁜 장미꽃이 그럴수는 없으니까요. 천사가 무자비가헤 살인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그는 홀린듯이 공주를 향해 비척비척 걷기 시작했습니다. 공주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더니 꼴사납게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경비병은 칼을 빼어들고 공주의 뒤꽁무니를 쫓았습니다. 그 꼴이 너무 우스워서 왕비는 어린아이처럼 밝게 웃었습니다. 그래요, 이런 쓰레기극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구경거리 아니겠어요?
"공주를 산채로 잡아오너라! 역모죄로 엄중히 처벌할테니까! 저년의 털을 깎고 가죽을 벗긴 뒤, 고기를 조각내어 스프를 끓일 것이다! 그 스프로 오늘 잔치를 열어 내 백성들을 배불리 먹일 것이다!"
"후추도 뿌릴 겁니까?!"
저 멀리서 경비병이 신나서 소리쳤습니다. 왕비는 그에게 밝은 웃음으로 화답했습니다.
"그래! 마음껏 뿌려주마! 저 년의 누린내를 없앤다는데 무엇인들 못하겠느냐! 가서 잡아만 오너라! 그러면 내 너에게 저 년의 머리통을 내어주겠다!"
공주의 머리라! 하얗고 보드라운 육질도 육질이겠지만 통통하고 탐스러운 입술을 생각하니 군침이 절로 돌았습니다. 경비병은 꿀꺽 하고 침을 삼켰습니다. 이제 경비병은 사냥꾼이 되어 공주를 추적했습니다. 그녀의 족적, 그녀의 냄새, 그녀의 흔적을 쫒으며 그녀를 사냥했습니다.
공주는 살기위해 미쳐버린 왕비와 사냥꾼을 피해 성 밖으로 도망쳤습니다. 성 밖에는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질척이는 땅을 밟으며 그녀는 문득 아버지의 친구라던 일곱 난장이를 떠올렸습니다. 깊은 숲속에 사는 그들이라면 공주를 지켜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왕비는 연신 웃으며 성 안을 배회했습니다. 공주가 사라졌으니 다시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건 자신이었습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상상했습니다. 모든 백성과 신하들이 우러러 보는 모습을. 성 안에 걸린 공주의 초상화에 침을 뱉고 진흙발로 밟으며 불에 태우는 모습을. 그리고 그 자리에 걸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을!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어서 치장을 하고 초상화를 그려야지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치장해야지요!
그녀는 황급히 얼굴을 씻어내고 화장을 했습니다. 분을 얼굴에 묻혀 하얗게 칠하고, 입술엔 염료를 칠해 붉게 만들고, 머리엔 먹을 발라 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물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누구니?"
비가 내려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그녀는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밝은 거울 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를. 거울 속 그녀는 지금까지 숱하게 봐온 그녀의 모습중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거울 속 그녀에게 방긋 웃었습니다. 그러자 거울 속 그녀도 그녀에게 방긋 웃었습니다.
한 순간, 번개가 내리쳤습니다. 가까운 곳에 떨어진 듯 커다란 소리와 함께 번쩍이는 섬광이 비췄습니다. 순식간에 어두웠던 방 안이 환하게 밝혀졌다가 다시 어두워졌습니다. 거울에 비치는건 그저 정적과 어둠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보았습니다.
흰눈보다 하얀 피부, 흑단보다 검은 머리결, 핏물보다 붉은 입술을 가지고 입술을 억지로 일그러뜨려 웃고있는 여인의 모습을.
거울에 비친 것은 틀림없이 왕비의 얼굴이었습니다. 그건 누구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겠죠.
왜냐면 보세요, 거울이잖아요? 그건 당연하다구요.
그러나 질투심에 눈 먼 어리석은 '마녀'가 본 것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녀는, 그녀는, 그녀는, 그년은, 그년은, 그 계집은,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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