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검 마두르크.

현존하는 유일한 성검.

태양빛에 달궈 달빛에 식혀낸 그 칼날은 한번 베어 통나무를 자르고, 일곱 대사제의 축복을 받은 그 검자루는 잡기만 해도 모든 질병을 없앤다고 합니다. 

오래전, 대륙을 덮친 화이트 드래곤 마두르크의 목을 베어냈기에 붙은 이 검의 이름이 그 위광을 나타내죠.

선택받지 못한 자가 잡으면 온 몸의 기력이 빠져나가 세 번 휘두르기 전에 쓰러진다기에 현재는 왕가에서 보관중인 물건입니다.

그리고 그것과 같은 정도의 마력량을 띄는 물건을,

“……내 머리 말리는 데 썼다고?”
“……하루에 30분씩……?”
“그, 서, 선생님이라면 아실거에요! 사, 사, 상식적으로 드라이기를 누가, 코, 콘센트 없이 쓸 수 있어요!”

클레어는 여러가지로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성검으로 머리를 말려온 것 같은 느낌도 그렇지만, 그걸 태연하게 써온 시니아는 또 뭔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지야, 도대체 뭘 만든거니…….”

우물쭈물하던 예지는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드라이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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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딱, 똑, 딱.

방 안의 시계바늘은 열심히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슈팔트는 찻잔을 채우려고 주전자를 들었다가, 이미 텅 비어버린 것을 깨닫고는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조금……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하지만 전하.”
“클레어. 우린 오늘 결혼했어요. 생각할 일이라면 넘쳐 흐릅니다. 우리의 신혼을 골치아프게 시작하고 싶진 않아요.”

아슈팔트는 클레어의 두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에 대한 것도 더 많이 듣고 싶소. 지금의 당신도, 전생의 당신도.”
“……네, 전하.”

한창 달달한 분위기를 풍기던 두 부부는 우울하게 자신들을 보던 예지를 보고는 헛기침을 하며 손을 놓았습니다.

“그, 옷은 걱정말게. 내일까지 세탁해서 돌려줄테니.”
“아, 아뇨……안그러셔도…….”
“내가 미안해서 그러네. 아, 그렇지. 아예 내일 한번 방문을 하는 건 어떤가?”

클레어는 좋은 생각이라는 듯 방긋 웃으며 예지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래, 너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궁금하고.”
“아, 그, 저…….”

한참이나 망설이던 예지는 마지못한 듯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로 네, 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작디 작은 대답을 들은 클레어는 부드럽게 예지의 머리를 쓸어내렸습니다.

“그럼, 내일 마차를 보내줄게. 어디로 보내면 될까?”
“네? 어, 어……그러면 여기 공방으로…….”
“그럼 점심시간에 보낼게. 같이 점심먹으면서 이야기 하자. 알았지?”
“어, 그, 그게……네…….”
“그럼, 시니아. 준비해줘라.”
“알겠습니다, 전하.”

자리에서 일어난 아슈팔트는 예지의 손을 잡고 그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습니다. 히이익, 하는 숨넘어가는 소리가 예지에게서 흘렀지만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진심으로 사과하겠네. 부디 좋은 관계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겠어.”
“어, 네, 어……그, 어……겨, 결혼, 축하드려요……전하…….”

시뻘개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가까이 있던 아슈팔트를 제외하면 듣지도 못했겠지요.

“……고맙네. 내 반드시 자네의 선생님은 행복하게 해줄테니 걱정말고.”
“네…….”

공방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해가 떨어져 어두웠습니다. 그 사이 다른 직원들은 퇴근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방 역시 불이 여기저기 꺼진 것이 을씨년스러워 클레어는 겉옷을 추켜 올렸습니다.

“어두운 곳이니 바래다 주겠네.”
“아, 저는 저어기 기숙사에 살아서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게.”

고개를 깊이 숙이는 예지를 클레어는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어, 서, 선생님…….”
“예지야. 꼭 내일 보자. 하고싶은 얘기가 정말 많아.”
“……네에…….”
“조심히 가고. 내일 보자!”

손을 흔들며 멀어져가는 클레어와 아슈팔트 뒤로 시니아가 등불을 든 채 고개를 숙였습니다. 예지는 허겁지겁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마차에 올라타려는 클레어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뒤를 돌아봤습니다. 가는 모습을 보려던 듯 오도카니 서있던 예지는 흠칫, 몸을 세웠습니다.

“근데 예지야. 너 담배피니?”
“……아, 저, 그게에…….”
“몸에 안좋으니까 끊고!”

클레어는 그렇게 말하고는 폴짝 마차에 올라타 아슈팔트의 팔에 매달렸습니다. 그 뒤로 올라탄 시니아가 문을 닫자마자 마차는 쌩 하고 달려나갔습니다.

마차의 흔들림을 온 몸으로 받자 피로감이 단숨에 몰려왔습니다. 아슈팔트와 시니아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클레어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루에 이렇게까지 여러 일들을 겪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수없이도 일어났던 일이지만,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는 꽤나 얌전히 지냈던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결혼식도 했고, 자신의 품평도 올라갔고. 무엇보다도 오래 전의 제자를 만났으니까요.

창문에 머리를 기대니 서늘한 바깥의 온도가 유리를 넘어 이마를 식혀주었습니다. 클레어는 눈을 감고 예지와의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임예지.

딱히 특별할 것 이라고는 없는 아이였습니다. 내성적이라면 뭐, 내성적이었습니다. 친구들도 있고, 학교 성적도 평범했습니다. 책 읽는 걸 좋아하고, 노래듣는 걸 좋아하고, 가족들이랑 얘기는 많이 안하지만 사이는 좋아보였습니다.

자신이 가르치던 여러 학생 중 하나. 딱 그 정도로 좋아했고, 딱 그 정도의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그 일가족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기 전까지는 말이죠.

어디 놀러간댔던가, 아니면 잠깐 외출이었던가. 가족끼리 외식하러 간 걸지도 모르죠.

장례식장에서는 울고있는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 친척들이 모여서 조의를 표하고 있었습니다. 윤주 역시 절을 하고, 꽃을 두었습니다. 

어색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는 사람의 죽음이 그다지 실감나지 않던 나이였고, 그렇게 친하냐면 그건 또 아니니까요.

그러나 육개장을 한 숟가락 뜨는 순간 터져버린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담당하던, 같이 저녁식사도 하던 아이가 하룻날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예지의 꿈이 뭐였던가요? 좋아하는 노래는? 좋아하는 사람은 있었을까요? 가고싶은 대학교는 어디였을까요? 그 아이의 책장에 무슨 책이 꽂혀있었죠? 

조금 더 자세히 알아둘걸. 하루만, 단 하루만 더 이야기 할걸.

그녀는 결국 육개장을 삼키지 못한 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났습니다.

예지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해진 윤주는 취직도 하고, 자취도 하며 평범하게 지냈습니다. 부모님과 여행도 가고, 친구들이랑 맥주 한 잔도 하고, 직장에선 혼나기도 하는 바쁜 일상속에 예지에 대한 기억은 차츰 사라져갔습니다.

퇴근 하는 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간단히 군것질 할 것을 찾던 윤주는 간편식품 코너에서 발을 멈췄습니다. 인스턴트 육개장을 보니 불현듯 예지 생각이 나던 날이었습니다. 기분이 괜히 착잡해져 육개장과 소주를 사서 집으로 가던 윤주는 그렇게, 자신의 제자와 같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클레어.”

어느덧 잠에서 깬 아슈팔트가 천천히 클레어의 어깨를 감싸안았습니다. 그녀는 황급히 눈가를 손으로 훔쳤습니다.

“왜 울고 있어요.”
“아뇨, 그냥…….”

아슈팔트는 클레어의 눈가를 닦아주었습니다. 마차 안의 공기때문에 발그레해진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니 아직 물기가 남은 탓에 촉촉함이 입술에 남았습니다.

“울지 마요, 내 사랑. 좋은 날이잖습니까.”
“……후훗, 네. 좋은 날이에요.”

클레어는 밝게 웃으며 아슈팔트에게 입을 맞췄습니다. 그는 그대로 클레어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는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 주었습니다. 마치 아기를 달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클레어는 어쩐지 그것이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어쩌면 19살이 아니라 9살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그녀는 잠시 고민했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중, 아슈팔트의 손이 멈췄습니다.

“그러고보니 약속을 어겼군요.”

클레어는 얼굴을 슬쩍 들어 아슈팔트를 올려보았습니다. 그는 난처하단 듯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제 3 황녀전하 말입니다.”
“리리아요?”
“아까 결혼식 전에 울리지 않겠다고 약속드렸는데.”

클레어는 키득키득 웃으며 아슈팔트를 더욱 끌어 안았습니다.

“괜찮아요. 기뻐서 울었으니까.”
“……결혼생활에 겁먹었나 하고 무서웠습니다.”
“애시가 있고 시니아가 있는데 무서울 게 어딨어요.”

클레어는 아슈팔트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거칠지만 정돈된 흑색의 머리카락이 손가락을 간지럽혔습니다. 그것이 조금 부끄러워진 아슈팔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버릇될 것 같군요.”

하고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듣지 못한 클레어는 고개를 갸웃 했습니다. 아슈팔트는 세차게 고개를 돌리고는 턱을 괸 채 창밖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이 모든걸 실눈뜨고 보던 시니아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차마 일어났다고 얘기하지도 못한 채, 신혼부부의 달달한 기운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언제 도착하려나.’

덜커덩, 덜커덩.

숨막힐 정도로 애정행각을 펼치는 신혼부부와, 숨막히는 답답함을 느끼는 시녀를 싣고, 마차는 어둠속을 하염없이 달려나갔습니다.

Posted by B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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