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포 일 러 주 의 !

 

※ 본 팬픽은 네이버 시리즈에서 활동하시는 월하야담 님의 '귀령'을 바탕으로 한 팬픽입니다.

 

해당 소설의 결말, 또는 전개에 대한 내용이 있으므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귀령' 2부의 결말을 읽지 않았거나, 해당 소설을 읽으실 예정이라면 본 팬픽을 읽는 것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 *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한 납골당.


자욱한 향과 기도하는 소리가 그 안을 가득 메운 곳에서 한 청년이 유골함 앞에 엎드려 있었다.
한참이나 절을 한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고개를 푹 숙이고는 그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 어머니. 저 건우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왔습니다."


무뚝뚝함이 묻어나오는 말투로 건우는 안부인사를 올렸다.


이윽고 메고있던 배낭에서 북어포, 사과, 배, 청주 한 병을 꺼내 유골함 앞에 있는 작은 상 위에 차렸다.


조촐한 차례상이었지만 상이 작아서 그런지 한가득 차 보였다.


향을 꽂아 넣은 후,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타닥, 하는 소리와 함께 향불이 피어올랐다. 아찔한 향내가 건우의 코를 찔러왔다.



"준비한 게 이것 뿐이라 죄송합니다. 다른 건……준비할 수가 없더라구요."


건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턱을 쓰다듬었다. 자른 지 얼마나 됐는지, 거칠거칠한 감각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원래라면……."


입술을 잘근 씹었다. 울컥하는 마음이 한 순간 피어올랐다가, 그것을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깊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나니 허전한 마음만 가득해졌다.


"원래라면……신부감도 데려왔을겁니다."


그 순간, 치밀어 올라오는 구역질에 건우는 화장실로 뛰쳐들어갔다. 변기통에 주저앉아 안에 든 것을 쏟아내려 했지만, 나오는 것은 허여멀건한 위액 뿐이었다. 최근 며칠동안이나 먹은 것이라곤 물밖에 없었으니까.


얼마나 토악질을 해댔는지, 쓰라린 속을 감싸며 건우는 변기 앞에 주저앉았다. 더러운 화장실 바닥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의 인생은 밑바닥까지 떨어지고야 말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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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겠다고 그렇게나 다짐했다.


언제나 옆에 있는 범으로서 살겠다고 그렇게나 다짐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스러져 간 해원보살님 앞에서, 자신을 아들처럼 아껴주던 이장님 앞에서,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금화보살님 앞에서 그렇게나 다짐했다.



그랬는데.



결국 건우는 거대한 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범은 무슨, 영지의 놀림대로 그는 기껏해야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태상장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결국 하연은 건우에게 산군의 기운을 씌우고, 그는 온 몸에 쏟아지는 기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이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눈을 허옇게 뒤집어 깐 만덕이 기절해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온 몸의 근육이 모조리 끊어진 듯한 고통이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그는 차디찬 흙바닥에서 피거품을 내뿜으며 꿈틀거릴 뿐이었다.


'선녀님.'


그 격통 속에서 든 생각에 건우는 어기적 어기적 기어서 몸을 돌렸다. 자갈들이 상처를 긁을 때 마다 비명을 내지르며 그는 세암당을 바라봤다.


그리고 배를 끌어안은 채 쓰러져있는 하연을 봤을 때.


"아……아아……!"



신경을 찢는듯한 고통 속에서 그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연을 향해 기어갔다. 손톱이 뜯겨나가고, 뺨이 갈려나갔다.
그렇게 간신히 세암당의 툇마루에 올라왔을 때.


"안돼……안돼, 안돼, 안돼, 안돼……!"


그는 하연을 천천히 끌어안았다. 힘이 모조리 빠져버린 사람 특유의 무게가 그를 짓눌렀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가볍던 하연의 몸이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선녀님……선녀님, 눈 좀 떠보십시오……선녀님……!"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마치 길디 긴 잠을 자듯이, 하연이 추욱 늘어졌다. 건우는 먹물과 핏물이 뒤섞인 하연의 손을 기도하듯이 꽈악 붙잡았다. 그러나 따스했던 그 손은 마치 흙바닥처럼 거칠고, 차가웠다.



"선녀님……다 끝났습니다……다 끝났다구요……이제 일어나셔야죠……."


언제나 빨갛던 볼은 핏기가 빠져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그는 하연의 가슴에 귀를 댔다. 또, 볼록하게 올라오기 시작한 그녀의 배에 귀를 댔다.
들려오는 것은 고요뿐이었다.


"선녀님……! 이화선녀님!"


그는 마구잡이로 하연의 몸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 감긴 눈은, 떠질 줄 몰랐다.


"하연아아아아아!!!!!!!!!"


그렇게, 이제서야 피어나기 시작한 꽃은.
그렇게, 져버리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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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뭘 해야 할까요……?"


간신히 구역질이 멈춘 건우는 다시금 부모님의 앞에 섰다. 미친 듯이 찾아간 금화당의 전안에서, 신장칼을 움켜쥔 채 목을 매단 만덕의 시신을 본 그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세암당으로 갈 수도 없었다. 서울에 있던 그의 집은 팔아넘긴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며 편히 쉬지도 못한 채 그는 그저 숨만 붙어 살아있었다.


그래, 살아있었다.


오직 그만이 살아있었다.


가족도, 연인도, 아이도, 복수할 대상마저 잃어버린 채, 그는 살아있었다.


"왜 제가 살아있는건가요……?"


대답없는 물음에, 그저 향불만이 타오를 뿐이었다.

Posted by B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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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금은 인공지능용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그냥 틀어두기만 하면 되잖아.
그쵸. 한 1주일은 걸리긴 하지만요.
근데 내가 여기 처음 입사했을 때는 그것조차 없었단 말이야?
네? 그럼 뭘로 학습을 시켜요?
실전으로.
……네?
너도 슬슬 알겠지만, 고객사마다 요구하는 스펙이 다르단말이야.
그쵸…….
그리고 새로운 고객사를 만들 때 마다 스펙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어……그러면…….
그치. 고객사 하나 만들 때 마다……존나게 박아야 했단 거지.


"오늘부로 같이 일하게 된 희성이다. 최 부장, 잘 좀 가르쳐."
"잘 부탁드립니다!"
"아, 얘가 걔에요?"

그러면서 최현수 부장님이 날 보는데. 캬, 그 때 부장님 표정을 봤어야 돼. 도살장에 끌려온 소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
그때는 내 몰랐지. 그도 그럴게, 며칠정도는 서류작업만 했거든? 뭐, 복사하고 코팅하고. 근데 한 일주일정도 지나니까 부장님이 오시더라고.
허…….

"그, 뭐냐. 이름이……."
"박희성입니다!"
"아, 그래, 희성이. 미안하다, 요즘에 내가 정신없어가지고 신경도 못써줬네."
"아닙니다. 일하려고 온건데요, 뭐."
"패기도 좋구만. 그……다른 게 아니고. 일 하나만 좀 시키려고 하는데."
"네!"

……뭐 였을 거 같냐.
……제가 했던 그거요?
그것보다 심각했지. 애초에 넌 알고 들어온 거 잖아. 난 이런건줄 몰랐단 말이야?
와, 그럼 무슨 회산줄 알고 들어오셨어요?
나 입사할 때는 틀림없이 산업용 인공지능 개발자 뽑는대서 왔는데.
산업용이요?
설마 그 산업이 그 산업일 줄 알았냐. 아무튼 그래서 처음 일 시킬 때는 존나 식겁했지.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요."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어……그러니까."
"이거 다 만들었으니까, 창고에 가지고 가서 섹스 좀 학습시키라고."

야. 근데 그 다 만들었다는 게 뭐였는 지 아냐.
지금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거랑 똑같은 거 아니에요?
그럼 내가 얘기를 안하지.
그럼요?

"……프레임만 있는데요……?"
"나머지는 외주에 맡기는 거야. 일단 인공지능이랑 내부는 만들어뒀으니까 학습만 하면 돼. 메뉴얼 그 위에 있지. 그거대로 하고."

……내부요?
어, 내부.
프레임만 있었다면서요.
……아래쪽만 구현돼있더라.
……토할 것 같은데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뭘 기대하면서 왔는진 모르겠는데, 여긴 그런 회사야. 나갈거면 빨리 나가라. 나도 젊은 놈한테 이런 거 시키기 싫다."
"……."
"아니면. 내가 하랴?"

그렇게까지 말해버리니까 할 말이 없더라고. 그래서 그거 가지고 가려고 하니까 또 부르더라고.
왜요, 이런 일 시켜서 미안하대요?
아니. 학습 시킬 체위 알려주더라.
…….

"……이게 뭔데요?"
"네가 학습시킬 목록."
"……이거 옆에 시간은 뭡니까?"
"네가 학습시킬 시간."
"……30분씩 시키라구요?"
"어. 아까전에 점심먹고 약 준 거 먹었지? 그거 사정지연제랑 발기촉진제니까 한 20분 있다가 시작해라."
"……."

그럼 부장님 책상 위에 있던 약병이 비타민이 아니고…….
그거 먹지 마라.
……왜요? 몸에 안좋고 그래요?
아니. 효과 죽여주거든.
…….
그래서 아무튼……한 3시간? 걸리더라고.
……효과 죽이긴 하네요.
……그리고 다른 것도 죽이더라고.
네? 어떤거요?
야, 이게 지금은 인공근육 펌프가 한 30개 들어가잖아. 근데 그 때는 10개가 안됐단말이야?
……아, 잠깐만요. 설마.
이게 갯수가 적으니까 공기를 좀 빡빡하게 줬는데 이 잡아주는 게…….
……저 일하러 갈래요.

"……다녀왔습니다."
"고생했다. 여기 두고 퇴근시간까지 휴게실에서 좀 쉬고 있어."
"네……."
"이따가 너 환영회 할건데, 올거냐?"
"……네."
"당분간은 안시킬테니까 그렇게 기분나빠하지 말고."
"……네."

그게 뭐 내 첫일이었지. 그리고 당분간 그게 내 주 업무였고.
……제가 지금 편하게 일하는 거네요.
야 너는 최소한 사람 얼굴 같은 거 보고 하잖아. 나는 한 2년동안 프레임 보면서 했어.
근데, 그게 서요?
……부장님 자리에 약병이 몇개냐?
……세 개요.
알겠지?
……절대 안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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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개발자  (0) 2022.05.07
Posted by B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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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50분. 희성은 이어폰을 꽂은 채 사무실로 들어왔다. 올해로 이 회사에 들어온 지 5년차, 그것을 예의없다고 나무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도 그럴게 사무실에서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는 부장도, 의자에 기대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 과장도, 심지어 입사한 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아 얼굴이 새빨개진 채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신입사원 역시 이어폰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희성은 이어폰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어쩔 수 없다. 그것은 그의 업무였고, 그가 맡은 프로젝트였으며, 그리고 그의 책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폰을 귀에서 빼냈다.

"아앙! 너무 좋아! 오빠! 더 세게!!"
"여기가 좋아? 이렇게 축축해져서는? 응?!"
"좋아! 거기 너무 좋아!!"

희성은 어제 봐둔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노트북에서 재생되고 있는 성인용 비디오의 남은 재생목록을 확인했다.
앞으로 7개. 얼추 10시간동안 이 망할 성인 동영상들은 재생되고 있을테고, 볼륨조절조차 하지 못한 채 교성만이 이 사무실을 가득 메우고 있을 것이다. 다른 직원들의 항의를 듣기도 이젠 지긋지긋한데도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성생활용 안드로이드, 그러니까 섹스로이드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자신을 탓해야지.

희성은 화면에 띄워둔 인공지능 학습용 프로그램을 확인했다. 푸른색 그래프가 중간정도에서 울렁거리며 그려지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학습 중 이란 표시였다. 볼륨이 조금이라도 작아지면 학습률도 적어지기에 늘 자신의 귀로 확인해야만 했다.

"오빠아아악! 아아악!"

애처로운 단말마와 함께 길디긴 한숨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희성은 옆에 널부러진 노트의 체크리스트에 V표시를 그려넣었다. 시간별로 그려진 표에는 빼곡하게 V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노트를 다시 엎어둔 뒤 서랍을 열었다. 빼곡한 케이블들과 측정기들 사이로 담배가 보였다. 곽을 흔들어보니 몇 개피 남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는 담배를 들고 사무실을 나가며 슬며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신입사원, 영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영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책상 위에 올려둔 자신의 담배를 들고 희성을 쫓아 나왔다.

희성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들이쉬었다가 길디 긴 숨을 내쉬며 영수를 바라봤다. 뭐가 그리 허리가 아프신지, 몸을 한창 숙이고 있는 영수를 보니 웃음만 나왔다.

"좆같지?"
"그……아뇨, 저……."
"그래, 그래. 뭘 생각하면서 왔는 지 자알 알지."
"……아하하하."
"회사에서 야동도 틀어줘, 박게도 해줘, 그러면서 돈도 줘. 이만한 회사가 어딨다고."
"……네, 뭐……."

 영수는 얼굴도 마주치지 못한 채 빠끔빠끔 담배만 물었다. 

"어휴, 시발. 야, 너도 한 2년만 다녀봐라. 뭘 봐도 꼴리질 않아."
"어, 그거는 대리님, 혹시 나이때문에……."
"……."

희성이 눈만 돌려 슬쩍 바라보니 키득거리며 웃는 영수의 모습이 보였다. 참 깡다구는 좋은 친군데. 희성은 머리를 긁적 거렸다.

"근데 저거, 언제까지 계속 틀어야돼요?"
"오늘 하루종일."
"……."

스읍, 후. 희뿌연 연기가 스멀스멀 흡연실을 메웠다. 영수는 재떨이에 재를 톡, 톡 털어냈다.

"아니 진짜로, 퀵런닝 프로그램 구매 안해주신대요?"
"당연하지. 우리 회사가 돈이 어딨다고."
"근데 너무 비효율적이잖아요. 그리고……좀……그래서."
"그치, 그거만 있으면 이렇게 회사에서 야동 틀어놓을 일도 없는데."
"……."
"아, 그건 계속 하고싶은 눈치다?"
"아아뇨, 그건 아니고……."
"야.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진거야. 예전에 어땠는지 알려줘?"
"네, 뭐……."

떨떠름한 영수의 반응이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희성은 담배를 한 개피 더 꺼내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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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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