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모음 2

카테고리 없음 2023. 12. 18. 14:17

성대한 결혼식이었습니다. 그거야 황제가 직접 참석할 정도 였으니 말이죠. 거기다가 5년만에 황비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얼굴을 비췄으니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황비께서 행차하실 정도인겁니까?”
“모르셨어요? 클레어 공녀님이 황비궁의 문을 여셨잖아요?”
“아니, 황제께서도 열지 못한 문을 어떻게?”
“그게, 이건 제가 소문으로 들은건데.....”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는 호기심과 시기, 그리고 질투가 엉겨 붙어있었습니다. 단 한명의 영애가 도대체 어디까지 이 제국을 바꿔놓은 건가요. 푸른 곰의 마음을 녹이고, 황비궁을 개방하고, 남부의 무역상단을 손수 일궜으며, 난민과 빈민들의 식량을 개선해 놓은 그녀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요.

결혼식장에 있는 이 호화찬란한 음식들도 보세요. 누구나 잡초라며, 나무 뿌리라며 빈민들조차 질색하던 이 ‘나물’이란 음식은 도대체 어디서 온 지식이란 말인가요. 거기에 ‘고추장’과 쌀을 섞은 ‘비빔밥’은 그야말로 미의 결정체였습니다. 귀족이나 되는 분들이 소중한 금덩이라도 되는 양 나무그릇을 두 손으로 꼬옥 잡고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만들어낸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보통의 귀족 아내들은 황제와 황비에게 안부를 전하기만 해도 체력이 떨어져나가건만, 클레어는 달랐습니다. 품위를 잃지 않은 채, 한 사람씩 자신이 손수 걸어가 두 손을 잡아주고, 직접 절을 하며 성의를 다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와줘서 고맙네, 브렌다. 쌀이 정말로 품질이 좋아.”
“먼 길 와주었네, 이벨. 나물이 정말 맛있게 됐더군.”
“아, 이르펜. 어서오렴. 부모님께서는 잘 지내시고?”

식장을 개방해 평민부터 빈민들까지 초대한 것은 그렇다고 칩시다. 그러나 더욱 대단한 것은 그곳에 온 평민들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직접 걸어다니면서 평등하게 인사를 건네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이례적인가요. 그리고 이 얼마나 대단한 귀족적인 자세인가요.

네, 누구나 말합니다. 귀족 된 자, 아래를 무시하지 말라고.

그러나 누가 실천합니까? 누가 평민들의 이름을 외우고, 직접 치하하겠습니까.

지금 앞에 있는 두 부부가 그렇습니다. 귀족들은 코웃음 치면서도 내심 부끄러워 했습니다. 저것이 진정한 귀족의 모습이라고. 그들 중 일부는 아마 며칠동안이라도 평민들을 향한 관심을 가지겠죠. 그것만으로도 제국의 엄청난 성장을 불러일으킬 거란 걸 누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한편, 클레어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뒤에서 시니아와 아슈팔트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당장에 도망쳤을지도 모르죠.

“마님, 보리를 재배해주신 레덴 부부에요.”
“정면에 단안경 쓰신 분이 이스타나 남작입니다.”
“왼쪽에 빈민 고아들, 납치되셨던 골목길에서 도와준 아이들이에요.”
“로데인 자작입니다. 우리 상회의 회계에요.”

명함을 전파하는 건 어떨까, 하고 클레어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암만 자신이 해보겠다고 한 일이지만, 그래도 힘든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모두에게 인사를 하는 데 성공하고야 말았습니다.

드레스룸에 들어온 클레어는 갑갑하던 코르셋부터 벗어버렸습니다. 푸우, 하는 깊은 숨과 함께 해방감이 단숨에 몰려왔습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피로가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할 일이 많았습니다.

“피곤하진 않으세요?”

때마침 시니아가 따뜻한 홍차와 스콘을 가져왔습니다. 한 입 마시니 달콤한 벌꿀과 레몬향이 피로를 덜어줬습니다. 스콘에 크림과 딸기잼을 바르며 클레어는 손짓을 했습니다. 

“시니아, 너도 먹어 둬. 이 뒤에 또 일해야지.”
“아가씨, 아니 마님. 피곤하시면 그냥 다음에 가셔도.....”
“지금이 제일 큰 기회야.”

클레어는 스콘을 크게 깨물었습니다. 크림과 잼이 엉켜서 입술에 가득 묻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 듯이 한 입을 더 먹었습니다.

“지금을 놓치면 화제성이 줄어들어. 지금이어야 돼.”

시니아는 한숨을 내쉬며 홍차를 더 따라주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콘을 반으로 쪼개 클레어의 앞에 놓아주고 나머지 반을 오물거리며 먹었습니다.

그때, 똑똑 하는 노크소리와 함께 아슈팔트가 쟁반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부인, 식사를 안했을 것 같아서 가져왔....”

방 안에 들어온 아슈팔트는 말을 잃었습니다. 속옷차림으로 볼이 미어터지도록 스콘을 먹는 클레어와 허겁지겁 입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니아의 모습은 참으로 귀족답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 사랑스러운 것이 콩깍지는 단단히도 씌였나봅니다.

“재성합니다, 전하.”

입에 넣어둔 스콘을 꾸역꾸역 삼키며 시니아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아슈팔트는 그녀를 다시 자리에 앉게 하며 쟁반을 테이블 옆에 두었습니다.

“먹어둬라. 사이다도 가져왔으니 같이 먹고.”
“네......”
“클레어도 제발 천천히 먹어요. 자, 스프도 좀 들고.”
“미안해요, 애시. 일주일 째 물만 먹었더니.”
“괜찮습니다. 식기 전에 먹읍시다. 일하러 가야죠.”

그렇게 가족이 된 그들의 단촐하지만 우악스러운 식사가 계속됐습니다. 달그락거리는 식기 부딪히는 소리와 빵을 찢고 수프를 마시는 소리 사이로 타닥, 타닥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다 마친 아슈팔트는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고는 클레어를 바라봤습니다. 배가 부른 지 행복한 한숨을 내쉬던 클레어는 느긋한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헤어 드라이어는 잘 될 것 같습니까?”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시니아.”

그 말을 들은 시니아는 어쩐지 뿌듯한 표정으로 헤어 드라이어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무래도 치장도구란 생각이 들어 그것을 처음보는 아슈팔트는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나무로 짜여진 그것은 길쭉한 주둥이와 손잡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푸른 마정석 하나가 손잡이에 박혀있었는데, 손에 잡아보니 엄지손가락의 위치에 딱 맞게 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우물쭈물하며 둘러보던 아슈팔트는 그것을 시니아에게 건넸습니다. 익숙하게 그것을 잡은 시니아는 마력을 흘려넣었습니다. 휘우웅, 하는 바람소리가 주둥이 쪽에서 나더니 이내 따뜻한 바람이 아슈팔트를 향해 불어왔습니다.

오, 하는 짧은 감탄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클레어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바람을 이용해 머리를 말리는 거에요. 마력을 흘리는 양에 따라 바람의 세기나 온도도 바꿀 수 있으면 더 좋겠는데, 그건 오늘 한번 얘기하려구요.”
“어디, 잠시....”

다시 헤어 드라이어를 받은 그는 마력을 흘려보았습니다. 그러자 따뜻한 바람이 얼굴에 뿜어져 나와 화들짝 놀라며 그것을 내려놓았습니다. 그것을 보며 시니아와 클레어는 마주보곤 웃었습니다. 시니아가 처음 사용할 때와 똑같은 반응이었으니까요.

“신기하군요.”
“덕분에 제가 좀 편해졌어요.”

하며 시니아는 어깨를 두들겼습니다. 이전까진 수건을 이용해 부지런히 말려도 두시간은 걸리던 것이 이젠 30분이면 충분하니 말이죠.

“러우스 상회는 역시 믿을만 하네요. 나중에 연구자문으로 몇 명 고용하고 싶을 정도에요.”
“나중에 고려해보도록 합시다. 이번에는 투자자로 만족하고. 자, 옷부터 갈아입읍시다. 춥겠어요.”

웃으며 아슈팔트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전히 속옷차림이었던 클레어는 얼굴이 빨개지며 그제서야 몸을 가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슈팔트는 눈물을 흘리도록 웃었습니다. 

러우스 상회는 마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했습니다. 배도 부르고, 마차 안은 솜으로 채워놓아 따뜻하다보니 세 사람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아슈팔트가 자신의 코골이 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마차 안이 습기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창문을 살짝 여니 서늘한 바람이 마차 안을 환기시켰습니다. 뺨을 스치는 공기가 좋아 잠시 그러고 있었더니 시니아가 살며시 눈을 떴습니다.

“더 자도 된다. 곧 도착하면 깨우도록 하지.”
“아닙니다, 전하. 제가 잠들어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시니아는 허리를 빳빳이 세웠습니다. 계속해서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려고 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고맙다.”

한창 잠들 뻔한 시니아는 눈을 깜빡였습니다. 아슈팔트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잘못들었나 싶을 때 쯤.

“그 사람의 가족이 먼저 되어줘서.”
“전하…….”
“내가 대신해줄 수 없던 형제가 되어줘서.”

그는 시니아를 바라봤습니다. 눈시울이 빨간 것이 피곤하기 때문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전시에 잃고 만 가족들을 떠올린 탓이겠지요.

“네 덕이다, 시니아.”
“전하, 저는……그, 그래요. 먹고 살 길이 필요해서…….”
“거창한 건 아니야. 그냥, 고마워서.”

아슈팔트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지킬 수 없었던 부모와 형제들. 그리고 그 고통을 알고 있는 세 사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준 그들만의 유대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시니아 역시 가슴이 뜨거워져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곳엔 소매로 눈가를 덮은 클레어가 있었습니다. 소매가 어쩐지 물기에 젖어있었지만 시니아는 그것을 모른척 하기로 했습니다.

마차는 어느덧 상회에 도착했습니다. 마차에서 내리니 따뜻한 곳에 있었던 탓인지 입에선 하얀 김이 숨쉴 때 마다 올라왔습니다. 커다란 문 앞에 서있던 드워프 경비가 세 사람을 향해 걸어오고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프레드리 공작님. 그리고 프레드리 공작비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발 밑이 미끄러우니 조심하십시오.”

경비는 경비소 안쪽에 보고하고는 세 사람을 앞장서서 공방으로 향했습니다. 공방으로 향하는 길은 경비가 말한 만큼 미끄럽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쾌적할 정도였죠.

시니아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습니다. 이런저런 물건들이 커다란 마차에 실리고, 마차에서 내려지는 모습들이 어찌나 신기하던지요. 옆에서 클레어가 조용히 야단쳤습니다. 그것을 앞에서 들었는 지 경비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한번 견학하셔도 됩니다.”
“아니, 아닐세. 미안하군.”
“아뇨. 저희로서도 프레드리 공작님과 연이 생기면 좋죠.  부디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경비는 여전히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며 클레어는 빙긋 마주 웃었습니다.

“남부로 진출할 생각이군.”

경비는 잠시 발을 멈추었다가, 이내 다시 걸음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띄고 있는 미소가 조금 굳은 건 기분탓이겠지요.

“맞습니다. 내년 겨울 쯤엔 남부에도 분점을 세우려고 하고 있죠.”
“그래서였군.”

클레어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습니다.

“드로민 공방 부장이 직접 안내해줄 줄은 몰랐어.”

그 말에 모두의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오직 한 사람, 클레어를 제외하곤 말이죠.

드로민은 잠시 눈을 깜빡이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뭐. 알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거래 상대로는 합격인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가씨?!”

어안이 벙벙한 아슈팔트와 시니아를 대신해 클레어는 노래하듯 설명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져온 물건을 생각해봐.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을 만들어 달라 하고, 그걸 팔겠다고 하는 사람. 수상쩍기 짝이 없지. 근데 소문으로는 남부에 상회도 만든 아가씨래. 상회를 만들려면 제일 필요한 건 정보력과 그걸 적용시키는 능력이야.”

클레어는 여전히 웃고있는 드로민을 향해 피식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시험해본거야. 과연 진짜로 내가 내 힘만으로 이룬건지. 진짜 본인의 실력이면 러우스 상회의 공방 부장 정도는 바로 알아볼테니까.”

시니아와 아슈팔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드로민을 바라봤습니다. 감히 귀족을 시험하려 한건가 싶기도 하지만, 딱히 예의에 어긋나지도 않았습니다. 긴가민가한 그 선타기야말로 그가 한 상회의 부장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더욱 감탄스러운 건 고작 말 몇마디로 그 진의를 파악한 클레어겠죠. 아슈팔트와 시니아는 마주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아닌데요.”

드로민이 말했습니다.

“그, 시험인지 뭔지 모르겠습니다만……네, 뭐……그냥 결혼 축하드릴 겸 길 안내드리러 나온겁니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영업 관련해서는 영업부랑 말씀을 나눠주시겠습니까? 저는 연구쪽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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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모음 1

카테고리 없음 2023. 12. 15. 15:47

클레어 로데니아의 삶을 잠깐 살펴볼까 합니다.

자다가 일어난 17살의 클레어는 대뜸, 자신의 전생이 김윤주이며 지금 자신이 판타지 세상에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 김윤주 씨는 이 세계에 환생한 대한민국에 거주했던 26살의 직장인입니다. 직업은 중소기업 경리구요.

비록 자신이 심심할때면 읽던 낭만 넘치는 세상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이 세상이 소위 말하는 이세계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오늘, 클레어는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들여보았습니다. 유리로 된 거울 속에는 푸른 빛깔의 긴 머리를 가진 소녀가 있었습니다. 순하지도, 그렇다고 표독하지도 않은 눈꼬리. 어디서나 보일법하지만 물빛을 한 머리카락이 그녀를 돋보이게 했습니다. 로데니아 공작가문의 외동딸이라는 지위 역시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역시 클레어의 위상을 높인 건 바로 저 북부의 대공, 트로젠 왕국의 방패, 드래곤 슬레이어, 설원의 푸른 곰, 아슈팔트 프레드리와의 약혼이겠지요.

물론 아슈팔트에 대해 길게 얘기하진 않겠습니다. 조각같은 외모와 듬직한 어깨, 왕국 최고의 검술실력, 얼음처럼 차가운 심장과 그의 충직한 신하. 알 건 다 아실테죠? 

아슈팔트와 클레어의 첫만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 특히 왕의 앞에서 올려붙인 귓방맹이는 지금까지도 화자되는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니까요. 

비록 그게 오해에서 시작된 일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귀족가의 장녀가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올린 싸대기는 훗날 아슈팔트 대공이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보다 뜨거웠고, 프로스트 베어의 발톱보다 날카로웠다’ 고 저서를 남길 정도였습니다. 그 뒤에 남긴 ‘날 이렇게 대한 사람은 처음이다’ 는 수많은 연애소설에서 사용된 문구이기도 합니다.

그런 클레어와의 약혼소식이 무도회장마다 울려퍼진 귀싸대기 소리의 유행을 부른 것도 뭐, 사실입니다만.

클레어는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오늘은 그 아슈팔트 대공과의 결혼식입니다. 긴 머리카락을 틀어올려 묶고, 화장을 한껏 한 모습은 자신이 보기에도 참으로 고왔습니다. 새하얀 웨딩드레스와 번쩍이는 보석들이 눈부실 정도로요.

“아가씨, 왜 한숨을 쉬고 그러세요.”

클레어를 치장해주던 시녀, 시니아가 클레어의 어깨를 부드럽게 안았습니다. 물론 원래는 무례한 행동이지만 지금만큼은 그녀의 온기가 필요했습니다. 클레어는 자신을 감싸안은 손을 덮었습니다.

“그냥, 실감이 잘 안나서.”
“저도 실감이 안나요. 그 개구쟁이 아가씨가 약혼이라니. 거기다가 상대도 상대잖아요?”
“네 덕분일까? 네가 거기서 케이크를 엎지르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테니까.”
“아, 아가씨! 그건 얘기하지 않기로 하셨잖아요!”

새빨개진 얼굴을 한 채 시니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습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일부러 연기하는 게 느껴지는 말투였습니다. 물론 클레어도, 그리고 시니아도 그걸 잘 알고 있죠. 그래도 둘이 같이 지낸 지 벌써 5년이 넘어가니까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까르륵 거리던 시니아는 짐짓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습니다.

“10살이나 차이나는 남편인데.....조금 아가씨가 아까워요.”
“시니아, 내 원래 나이를 생각해야지. 어린 애들은 애같아서 싫어.”

네, 시니아는 클레어의 전생에 대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와 비밀을 공유하는 유일한 상대죠. 그녀의 기억덕에 이런저런 이득도 제일 많이 보고 있구요. 예를 들어 보습제라던가, 화장품이라던가.

“아가씨.....”
“자, 그만 투덜거리고. 오늘 할 일이 많잖니?”

그렇게 말하며 클레어는 화장대 옆에 놓인 기괴한 물건을 향해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전생의 기억을 참조해 만든 물건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헤어 드라이어’라는 겁니다. 헤어 드라이어가 공용화되면 다른 여성들의 치장시간이 반은 줄어든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녀는 오늘, 이것을 상회에 팔 생각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돈 걱정은 안해도 될거야!”
“확실히 이 헤어 드라이어라는 거, 너무 편하니까요!”
“흐흐흐. 드디어 돈방석에 앉아 유유자적한 삶을 살 수 있어....!”
“아가씨, 아가씨. 저 잊지 않는다고 한 약속, 기억하시죠?”
“그럼! 너는 내 연구자문으로 평생 놀고 먹게 해줄게!”

기운차게 대답하는 클레어의 뒤로 똑똑, 하는 노크소리가 들렸습니다. 시니아가 문을 살짝 열어 방문객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가씨, 리리아 트로젠 제 3 황녀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클레어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붉은 머리를 한 인형과도 같은 소녀였습니다. 나이는 17이나 먹었을까요. 어딘가 앳된 모습이 남아있었습니다. 머리 위에는 작은 티아라를 올린 그녀는 한껏 얼굴을 찌푸린 채 클레어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트로젠 왕국의 제 3 황녀님을 뵙습니다.”

클레어가 인사를 하던말던 리리아는 으르렁거리듯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흥!”

하고는 고개를 팩 돌렸습니다.

“어디서 감히 내 사람을 채가는 주제에...”
“황녀전하.....”

그리고는 성큼성큼 클레어에게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주었습니다.

“날도 추운데 어깨는 다 드러내고! 난로는 코딱지만큼 피워놓고! 옷은 이렇게 얇고! 머리엔 무겁게 보석이 잔뜩! 코르셋은 대체 얼마나 조여둔거야! 우리 언니 숨은 쉬어지는거야?!”

그리고는 와락, 클레어의 품에 안겼습니다. 클레어는 천천히 리리아의 등을 토닥였습니다.

“전하, 머리 망가져요.”
“그런 거 몰라.”

난처하다는 웃음을 지으며 클레어는 시니아를 향해 손짓을했습니다. 그것만으로 이해했는지, 시니아는 문을 조용히 닫고 방을 빠져나갔습니다. 그것을 들었는지, 리리아는 더욱 품을 파고 들었습니다. 코르셋으로 한껏 조여진 배가 눌리는 압박감이 힘들지만, 클레어는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한참이나 부비적 거리던 리리아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꼭 행복해야돼, 언니?”
“물론이죠. 이렇게 사랑하는 전하도 계신걸요.”
“…...내가 받은 건 돌려주지도 못했는데.”
“전하께서 이렇게 건강하게 지내시는 모습만 봐도 제가 받은 게 더 많은걸요?”

리리아는 헤죽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입술이 삐죽 내밀며,

“이런 착한 사람이 그런 곰 같은 녀석한테 시집가는 게 이해가 안가.”
“곰 같은 사람이라 죄송합니다.”

그 말에 둘은 고개를 돌려 문을 보았습니다. 거기엔 훤칠한 남성이 문가에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다부진 어깨와 터터질듯한 가슴팍의 셔츠가 단련된 그 아래의 근육을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달린 훈장들이 아무리 빛을 발해도 그의 검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의 미혹에는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그가 바로 아슈팔트 프레드리, 푸른 곰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로 클레어의 남편이 될 사람이죠.

“그래도 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제 그 품은 저만의 것이라서 말입니다.”

뚜벅, 뚜벅. 구둣발 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습니다. 그에 물러나듯이 리리아는 더욱 깊이 클레어의 품에 껴안겼습니다.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리리아는 아슈팔트를 노려봤습니다.

“결혼식날 신랑이 신부를 보러 오는 건 안좋다고 들었는데, 아슈팔트 프레드리 공작?”
“결혼식을 질투하는 악령이라면 걱정마십시오. 방금 물리치고 온 참입니다. 시니아란 악령인데, 문 앞에서 들어오면 안된다고 하소연 하길래 애 좀 먹었죠. 마침 여기도 한 분 계시군요.”

능글맞게 웃으며 아슈팔트는 리리아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 3 황녀님을 뵙습니다.”
“아까는 악령이라더니요?”

피식 웃으며 대신 답한 클레어가 리리아를 꼬옥 끌어안았습니다. 아슈팔트는 무릎을 꿇은 채 클레어에게 웃음을 짓고는 리리아를 바라봤습니다. 리리아는 건방진 표정을 지었습니다.

“황족을 악령이라 멸칭한 죄, 이는 중대한 죄이다. 나는 이것을 좌시하지......”
“대기실에 커스터드 슈크림을 준비했습니다만.”

리리아는 잠시 눈을 데록 굴리고는 침을 꼴딱 삼켰습니다. 그러나 이내 더욱 목에 힘을 줬습니다.

“황족에게 감히 뇌물을...”
“사이다도 준비했습니다.”
“그럼 묵비하도록 하지.”

키득키득 웃으며 리리아는 클레어의 품에서 벗어나 아슈팔트의 앞에 섰습니다. 아슈팔트의 키가 워낙에 큰 나머지 무릎을 꿇은 채로도 얼굴을 마주볼 수 있었습니다.

리리아는 아까까지 짓던 웃음기를 지웠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었습니다. 황족의 품격을 갖춘 리리아를 본 아슈팔트 역시 웃음을 지우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습니다.

“아슈팔트 프레드리 공작. 리리아 트로젠 제 3 황녀의 명을 받으라.”
“아슈팔트 프레드리, 명을 받들겠습니다.”

아슈팔트는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아 리리아에게 내밀었습니다. 자신의 손은 지금부터 명령권자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리리아는 내밀어진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습니다. 

“우리 언니, 잘 부탁해요.”
“황명을 받겠습니다.”
“언제나 웃게 해줘요.”
“황명을 받겠습니다.”
“내 몫까지 사랑해주고.”
“황명을 받겠습니다.”

리리아는 손을 거뒀습니다. 아슈팔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깊이 숙였습니다.

“우리 언니 눈에서 눈물나면 가만 안둬요!”
“황명을 기쁘게 받겠습니다.”

히죽 웃으며 방을 나간 리리아를 시니아가 안내했습니다. 그걸 본 아슈팔트는 클레어에게 걸어와 가볍게 입을 맞췄습니다.

“미안합니다. 혹시 둘을 방해했습니까?”
“조금요?”

키득키득 웃는 그녀를 보며 과장된 당혹감을 보이던 아슈팔트는 화장대 위로 시선을 보였습니다.

“꼭 오늘 가야겠습니까? 피곤할텐데 다음에 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의 시선을 따라 헤어 드라이어를 본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괜찮아요. 오늘 이목이 가장 집중될텐데, 선전하기 좋은 날이죠.”
“무리하지 않는 게....”
“애시.”

다정하게 남편의 애칭을 부른 클레어는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날 믿어요.”
“....힘들면 바로 돌아오는겁니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오고 문 밖에서 집사가 소리쳤습니다.

“대공전하, 그리고 아가씨. 입장을 준비 해주십시오.”

아슈팔트는 클레어를 보며 미소지었습니다.

“그럼. 가실까요, 부인?”

Posted by B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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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피지와 검은 잉크자국, 그리고 부러진 깃펜이 어지럽게 놓인 책상. 누가 보면 쓰레기장인 줄 알 이곳이 내 책상이었다.
꾸준히 정리는 하고 있지만, 정신차려보면 어느새 또 이 모양으로 돌아왔다. 옆을 보면 에이다 대리의 자리도 만만치 않으니 딱히 내가 더러운 건 아니겠지?
자리에 앉아 대충 정리를 한 뒤, 방금 전 불을 켠 스크롤을 펼쳤다. 수정을 뽑아뒀으니 불이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스크롤엔 이런저런 기호와 마법진들이 어지럽게 나열되어있었다. 이 기호들과 마법진들이 연동해 불이 켜지는 구조다.
그럼 이제 불을 끄는 마법진을 만들어야한다. 
우선 옆에 있는 책을 펼쳤다. ‘초보자도 4주만 따라하면 스크롤 매지션’이라. 오늘로 4주차니까 어디 한번 보자고?
책장을 쭉 넘겨 ‘제 19강. 진짜 실습! 스크롤 위로 불을 켜보자!’로 넘어왔다. 불을 켜는 예제가 있으니 불을 끄는 예제도 있을텐데…….
갖가지 기호와 도형, 마법진들을 지나서 드디어 내가 원하는 곳에 도착했다.

[……이 장을 보고있단 것은 여러분의 감격스러운 첫번째 마법 스크롤이 완성된 이후일 것이다. 그럼 그 스크롤을 보며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거, 어떻게 끄지?’

바로 그렇다! 이것이 바로 스크롤 매지션이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다! 언제나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불을 붙이는 스크롤을 만들었으면 당연히 불을 끄는 스크롤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다음장에서는 붙였던 불을 끄는 스크롤의 작성법과 마법진의 원리에 대해 배워보자.]

그 다음장에는 다양한 기호들과 마법진들이 나열되어 있다. 열심히 메모장에 따라쓰고 있자니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하, 뒷장은 아직이었어?”

에이다 대리가 긴 담뱃대를 입으로 질겅거리며 물었다. 나는 책을 슬쩍 보여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런 마법진이나 도형같은 거, 다 외우고 다니시는 거에요?

내 말에 에이다가 담배연기를 후 내뱉었다. 그리고는 내가 쓰고있던 메모장을 뺏어가더니 그걸 한장씩 넘기며 봤다.

“착각하는 것 중 하난데, 마법진은 외우는 게 아니라 익히는 거야. 이런 그림 쪼가리 외울 시간에 한번이라도 예제 따라해 가면서 익히는 게 이득이라니까.”
“그치만 안외우면 그리지도 못하잖아요.”
“책 보고 배껴. 뭐 하러 머리아프게 외우냐.”

한국식 주입식 암기교육의 폐해인지, 외우지 않고 이걸 익힌다는 상상이 도무지 가지 않았다.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자니 그녀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옆에 의자에 앉아 깃펜을 잡았다. 양피지 위에 거침없이 도형을 그리는 모습이 어쩐지 어울렸다.

“자. 불을 켤줄도 알고 끌줄도 알아. 그럼 뭘 해야겠어?”
“…….”
“켰다 꺼야지. 여기에 지연 술식을 추가하기만 해도 되잖아.”

사각 사각.
깃펜은 양피지 위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에이다는 책을 마구잡이로 뒤적이며 마법진들을 손으로 짚었다.

“이거, 불을 켜는 마법진이지. 여기에 지연 술식을 추가하고. 마력안정화 추가하고. 그리고, 여기 있네. 불을 끄는 마법진. 이거 추가하고, 이걸 청색 수정에 연동하고. 그리고 여기에…….”

이것저것 가리키고 따라그리고 하더니 순식간에 스크롤 하나가 만들어졌다. 아까전에 내가 만든 스크롤에 비하면…….
에이다는 나를 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신기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걸 해봤기 때문에, 발이라도 걸쳐봤기에 보이는 경지.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희성 씨. 이거 희성 씨가 다 해본 것들이야. 똑같이 따라할 수 있어.”

그녀가 스크롤을 내게 내밀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전부 내가 해본 것들이다. 그것을 엮는 방법도, 마법진들도 전부. 
나는 수정을 통해 마력을 흘려넣었다. 화륵, 하고 푸른 불꽃이 스크롤 위로 피어올랐다. 다시 수정에 마력을 흘리니 불꽃이 꺼진다.
그저 그것뿐. 그저 켰다 껐을 뿐이다. 그럼에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희성 씨는 확실히 암기력이 좋아. 그러면 이 형태를 기억하는거야. 이 안에 쓰여진 건 전부 그것에 대한 받침일 뿐. 의미없이 이파리의 개수를 외우지 말고, 숲의 형태를 보는거야.”
“……잘 모르겠어요.”
“그치? 그러니까 일단은.”

에이다는 책을 내 앞으로 밀었다. ‘초보자도 4주만 따라하면 스크롤 매지션’의 소개문이 펼쳐져 있었다. 

“따라해봐. 그러면서 익혀나가는거지. 어렵지 않잖아?”

소개문의 마지막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따라하고, 익히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에이다는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책상 위의 양피지에는 에이다가 그려넣은 마법진이 놓여있다. 천재적이라거나 그런 게 아니다.

기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 그리고 그 기본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따라하라는 말. 
나는 양피지를 새로 꺼내 깃펜에 잉크를 채웠다. 그리고 에이다의 마법진을 똑같이 따라 그려갔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수정을 건드리니 불이 켜진다. 다시 건드리니 불은 훅 사라졌다. 아까 전 봤던 마법과 완전히 똑같은 마법 스크롤을 제작한 것이다.
나는 책을 펼쳐 이 기호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되짚어봤다. 가장 기초적인 기호들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그 기초들이 모여 복잡한 진을 형성하고, 그것들이 짜여져 하나의 스크롤을 구상했다.
이것이 ‘불을 켜고 끄는 마법.’
이것이 가장 단순한, 나의 기본이 될 마법.
그것을 깨닫는 순간, 책의 표지가 번쩍이기 시작했다.

“히익?!”

깜짝 놀라서 책을 던져버렸다. 그러나 책은 얼마 날아가지도 않고 공중에 둥실둥실 떠있었다.

“대, 대리님! 저거, 저거 뭐에요?!”

나는 에이다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기특하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단한데. 4주동안 잘 따라왔어, 희성 씨.”
“아니 그러니까 저게 뭔데요?!”
“저 책의 표지에 뭐라고 써 있었지?”

책 표지? 책 이름? 그러니까……? 초보자가 그 뭐 그거?

“초보자도 4주만 따라하면 스크롤 매지션.”

에이다가 히죽히죽 웃으며 책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 순간 표지의 빛은 이제 책 전체를 뒤덮으며 사무실을 메웠다. 눈을 뜰 수도 없는 빛에 나는 눈을 가릴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은 점점 사그라졌다. 나는 침침하기까지 한 눈을 몇 차례 깜빡였다. 눈을 감았다 뜰 수록 사무실의 풍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양피지가 널부러진 책상, 잉크얼룩이 가득한 깃펜,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책.
책이 날아다니고 있다. 책이 날아다니고 있는거야 마법도 있는 마당에 뭐 신기할 것도 없지.
다만 그 책의 표지에 얼굴이 달려있다면 조금 얘기가 다르지 않을까?

“으어어억 씨X!”

금색 눈썹과 잘 정돈된 콧수염. 강인한 눈매와 두껍고도 오똑한 콧날. 앙 다문 입술이 굳건한 얼굴이 달린 책이 황금색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모습이, 정말이지, 아, 맙소사.

“존X 징그러!”

왜 아저씨 얼굴이 달려있는건데.

Posted by B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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